이란이 군사적 용도로 핵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는 내용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가 8일(현지시간) 공개됐다. IAEA가 이란의 핵개발 사실을 언급한 적은 여러 차례 있으나 공식 문건을 통해 무기화 가능성을 거론한 것은 처음이어서 향후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에 더욱 힘이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란 핵개발은 군사적 목적
IAEA는 이날 보고서에서 “신뢰할만한 정보에 근거해 이란이 핵무기 기폭장치 개발과 2008~2010년 사이 컴퓨터를 활용한 모의 핵실험을 했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최소 12개 지역에서 무기 제조 프로그램이 가동됐다”고 밝혔다. 15쪽 분량의 보고서는 10개 이상 국가의 정보기관과 이란이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2003년 이후 이란의 핵개발 추진과 관련한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보고서는 이란이 파키스탄 밀매조직으로부터 입수한 핵탄두 디자인에 우라늄농축기술을 덧입히는 방식을 써왔다고 적시했다.
IAEA 보고서는 이란 핵프로그램과 무기 전용 가능성 사이의 연결고리를 최초로 찾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영국 BBC방송은 “컴퓨터 모의 실험은 핵무기 개발 과정에만 적용되는 고난도 기술”이라며 “핵의 평화적 이용을 주장해온 이란 당국을 당혹하게 하는 증거”라고 전했다.
IAEA는 그러나 이란이 실제 핵무기를 보유했는지, 아니면 당장 무기 생산에 필요한 능력을 갖췄는지를 입증할 확실한 물증은 제시하지 못했다. IAEA 주재 이란 특사인 알리 아스가르 솔타니에는 이날 “이미 오래 전에 확인됐던 주장의 재탕일 뿐 새로운 내용이 전혀 없다”며 보고서 내용을 일축했다. 실제 이란이 우라늄농축 정도를 20%까지 올렸다는 사실은 7월 이란 당국이 자발적으로 공개한 내용이다.
전문가들은 이란이 최소 3, 4개의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우라늄 원료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우라늄은 90%의 농도를 갖춘 고농축우라늄(HEU)이다. 영국 킹스칼리지의 윈 보웬 교수는 “이란은 1, 2년 안에 고농축우라늄 기술을 확보할 수 있지만 최고 지도부가 국제적 고립과 제재를 감수하면서까지 모험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핵 보고서 배후는 미국
IAEA의 이란 핵보고서 발표는 미국이 주도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뉴욕타임스는 “거짓 정보를 토대로 이라크에서 쓰라린 경험을 한 미국은 국제기구를 통한 이란 제재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왔다”며 “미 정보 당국이 8월 이란 중부 콤 지역에서 핵연료생산 시설의 지하 군기지 이동 사실을 포착한 이후 IAEA에 보고서 공개를 독촉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만큼 추가 제재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미 고위 당국자는 “이란 제재와 관련해 모든 수단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며 “이란 시중은행들과 유령회사들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제재의 실효성 여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4차례에 걸쳐 이란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란 제재 목록에는 핵활동 관련 품목의 수출입 금지, 기관ㆍ개인의 자산 동결 등 웬만한 수단이 다 올라 있어 이란을 옥죌 수 있는 추가 카드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추가 제재에 반대하는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하는 것도 관건이다. 특히 중국은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아랑곳없이 핵개발에 필요한 핵심 부품을 이란에 공급해왔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중국 외교부 훙레이(洪磊) 대변인은 9일 “대화와 협력을 통해 이란 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추가 제재에 사실상 거부의 뜻을 나타냈다.
최대 변수는 역시 이란에 대한 무력 사용을 배제하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의 움직임이다. 이스라엘은 “군사적 공격 가능성이 외교적 수단보다 더 근접해 있다”(시몬 페레스 대통령)고 밝히는 등 이란 핵 시설을 겨냥한 선제 공격 방침을 거두지 않고 있다. 미 외교협회 레이 타키 중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란 핵 시설은 여러 군데 산재해 있어 이스라엘이 독자 공격을 감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스라엘이 보고서의 팩트와 군사 위협의 수사를 결합한 시너지 효과를 통해 보다 강력한 대 이란 제재를 이끌어 내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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