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시간) 사임 의사를 밝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75) 이탈리아 총리의 인생 역정은 극적이고 화려하지만 논란도 많았다.
무일푼에서 부를 일궈 이탈리아 최대 재벌이 됐고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바탕으로 전후 최장수 총리가 됐다. 미국 CNN은 "베를루스코니는 언제 어디서나 도드라진 삶을 살았다"며 "국제 무대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지도자"라고 그를 평가했다.
20대 중반까지의 삶은 평탄한 편이었다.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 학비를 벌기 위해 유람선 가수로 활동하는 등 젊어서부터 여러 일을 했다. 그러다가 1960년대 초 밀라노 외곽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면서 성공 가도에 올랐다. 건설업으로 입지를 굳힌 베를루스코니는 80년대 언론 사업으로 눈을 돌려 명실상부한 재벌로 거듭났다. 그가 소유한 지주회사 핀인베스트는 현재 민영TV네트워크인 메디아셋을 비롯해 이탈리아 최대 출판사 몬다도리, 금융서비스그룹 메디오라눔, 명문 축구단 AC밀란 등을 거느린 이탈리아 3대 기업에 속한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그가 62억달러의 재산을 보유한 세계 118위의 부자라고 전했다.
93년 정계에 입문한 베를루스코니는 이후 총리만 세 차례 지낼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94년 중도우파 정당인 자유동맹을 이끌고 총선에서 압승, 처음으로 총리직에 올랐다. 그러나 잇단 부패 스캔들과 북부연맹의 연정 탈퇴로 7개월 단명에 그쳤다. 절치부심한 베를루스코니는 2001년 총선에서 재기한 뒤 2006년 4월까지 임기 5년을 채운 이탈리아 최초의 총리가 됐다. 2008년 4월엔 중도좌파 연정의 붕괴를 틈타 총리 자리를 탈환했다.
베를루스코니는 노회한 정치인이었다. 17년 정치인생 동안 뇌물수수와 불법 정치자금 조성, 탈세, 마피아 지원 등 갖은 부패 혐의로 열 여섯 번이나 기소됐으나 단 한 차례도 유죄판결을 받지 않았다. 2008년 이후 야당이 주도한 53회의 불신임 시도에서도 불사조처럼 살아 남았다.
하지만 지난해 불거진 17세 미성년자와의 섹스 스캔들까지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는 사실이 아니라며 완강히 부인했지만 또 다른 성추문과 부패 의혹이 줄줄이 터져 나왔고 이와 관련한 4건의 재판에 연루돼 있다. 엎친데덮친격으로 급격히 확산된 재정위기는 반 베를루스코니 정서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연금축소, 정부자산 매각 등 각종 경제 회생안을 밀어붙이며 반전을 꾀했으나 집권당 내에서조차 신뢰를 잃은 리더십을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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