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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팬택에 주목해야 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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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팬택에 주목해야 하는 까닭

입력
2011.11.08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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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택’하면 모르는 사람도 많다. 역사가 오랜 기업도 아니고, 규모가 아주 큰 회사도 아니니 그럴 수 있다. 차라리 휴대폰 브랜드 ‘스카이’, 그리고 스마트폰 ‘베가’를 만드는 회사라고 해야 일반 소비자들에겐 더 익숙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회사가 우리나라 기업사, 특히 IT산업에서 아주 주목할 만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믿는다. 애플처럼 혁신의 세계를 연 것도 아니고, 삼성전자처럼 경이적 시장지배력을 가진 것도 아니지만, 팬택에는 분명 특별한 DNA가 있으며 이를 통해 신화를 써가고 있기 때문이다.

세 가지 신화

첫 번째는 제조업의 신화다. 팬택은 1990년대 초 ‘삐삐’ 제조회사로 출발, 휴대폰 사업전환을 통해 글로벌시장까지 진출했다.

한국은 제조업으로 큰 경제다. 하지만 압축성장시대가 끝나면서 제조업 창업의 맥은 끊어졌다. 지금 30대 기업, 혹은 50대 기업 면면을 보자. 과연 최근 십수년 안에 설립된 제조업체가 과연 있나. NHN NC소프트 같은 신흥강자들은 많지만 한결같이 소프트웨어 쪽이다. 하기야 요즘 같은 세상에 공장 짓고, 계속 투자 하고, 겨우 신제품을 만들어도 성공이 담보되지 못하는, 정말로 눈물과 인내가 필요한 제조업을 누가 하려고 하겠나.

유일한 곳이 팬택이다. 90년대 이후 창업해 글로벌 시장까지 명함을 내밀었던 제조업체, 더구나 자본 기술 브랜드파워를 겸비한 삼성전자 LG전자 같은 초대형 기업들과 ‘맞짱’을 떴던 곳은 오직 팬택 뿐이다. 제조업을 기피하고 창업정신이 실종된 우리나라 기업풍토에서 팬택이 유별나 보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두 번째는 샐러리맨의 신화다. 창업자 박병엽 부회장은 스물아홉 전자회사 영업사원일 때 팬택을 세웠다. 샐러리맨으로 출발해 기업을 만들고, 한창 잘 나갈 때도 ‘비싼 돈 줄테니 팔라’는 유혹을 뿌리친 채 계속 투자한 창업가는 근래에 박 부회장뿐이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젊은 세대들에게 그는 창업가 정신, 기업가 정신이 뭔지를 보여주고 있다.

세 번째는 재기의 신화다. 팬택은 지금 워크아웃 상태다. 규모의 열세를 견디지 못해 2006년부터 채권단 관리하에 들어갔다. 박 부회장 역시 워크아웃 개시와 함께 모든 지분을 포기, 오너 아닌 전문경영인 신분으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IT처럼 제품주기가 빠른 산업에서 워크아웃 기업으로 살아간다는 건 정말로 힘든 일이다. 노키아 모토로라 같은 굴지의 기업들도 줄줄이 나가 떨어지는 데가 바로 스마트폰 시장인데, 팬택은 16분기 연속 흑자행진 중이다. “졸면 죽는다는 IT시장에서 워크아웃 기업이 꾸준히 신제품을 만들고 이익을 낸다는 건 기적에 가깝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신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작지만 신화적인 기업’ 팬택은 지금 중대한 변곡점에 서 있다. 이제 한달 여 후면 워크아웃 졸업장을 받게 된다. 실적이 좋아져 족쇄에서 벗어난다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부채상환 지분처리 등 풀어야 할 과제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전적으로 팬택과 채권단이 풀어야 할 문제지만, 어쨌든 팬택 신화는 계속됐으면 한다. 제조업에서도 창업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규모 작은 기업도 삼성 LG같은 매머드 기업에 덤빌 수 있다는 용기, 샐러리맨도 사장이 되고 오너가 될 수 있다는 희망,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확신까지, 창업을 꿈꾸는 젊은 이들과 도약에 허기진 중소기업들에게 팬택이 보여줄 수 있는 건 아직도 많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팬택은 재기에 꼭 성공해야 할 사명이 있다. 박 부회장 역시 아직은 여백으로 남아 있는 제조업 창업가의 성공스토리를 계속 써나가야 할 책임이 있다. 채권단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대승적 판단이 필요하다. 언제까지 애플과 스티브 잡스만을 부러워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성철 산업부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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