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중요한 해외 연설문을 만드는 과정에서 외국 업체에 초안 작성을 의뢰하는 것이 관행인지 여부를 둘러싸고 7일 논란이 벌어졌다. 지난달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 의회와 백악관 등에서 행한 연설을 위해 주미 한국대사관이 9월에 연설문 작성업체인 웨스트윙라이터스에 4만6,500달러를 주고 자문과 초안 작성을 의뢰했던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임태희 청와대 대통령실장은 이날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연설문 의뢰 논란과 관련, "대통령 연설문은 우리 연설비서관과 참모들이 작성한 것"이라며 "(미 의회 연설이) 귀중한 기회이니까 미국 의회에서도 어떤 기대를 갖는지 자문을 받은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임 실장은 이어 "외국 연설문을 만들 때 해당 국가의 관심 있는 이슈에 대해 해당 한국대사관에서 취합해서 자료를 보내오고 있다. 그 중에 미국 업체가 (자문) 대상기관이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 절차는 과거부터 내려오는 관행"이라고 말했다.
반면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낸 양정철 전 비서관은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문 작성 과정에서 외주를 맡긴 것에 대해 관행이라고 주장하는데, 참여정부와 그 이전 정부에서는 그런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 "(청와대의) 핑계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양 전 비서관은 "(연설문 초안을 외국 업체에 맡긴 것은) 독재정권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라며 "국가 수반의 연설문을 영리 행위를 기본으로 하는 외국업체에 맡겼다는 것은 해외토픽감"이라고 비난했다.
사실을 확인한 결과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미국 방문 당시에서도 주미 한국대사관은 미 의회 연설 등을 위해 현지 컨설팅업체에 자문을 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처럼 액수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199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 때에는 밥 다우넨(Bob Downen)에, 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 때에는 제퍼슨 그룹(Jefferson Group)에 의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미 의회에서 연설한 적이 없다.
외교부 조병제 대변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 방미 때도 미국 컨설팅 업체의 도움을 받는 등 관행인데 이제 와서 문제가 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할 때 청와대는 외교부, 국정원, 주미 한국대사관 등 다양한 곳에서 의견을 구한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 컨설팅업체의 초안이나 자문이 실제 연설문에 어느 정도 반영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미 의회 연설은 의미가 크기 때문에 굉장히 다양한 곳에서 자문을 구하고 초안을 받아 그걸 바탕으로 10회, 20회 독회를 거쳐 최종 연설문을 만든다"며 "(주미 한국대사관의) 초안은 그 중에서 극히 일부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미 업체의 자문 내용을 어느 정도 연설에 반영했는지에 대해 구체적 답변을 하지 않았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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