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낙엽의 계절이다. 사실 낙엽은 미생물들이 먹기 좋은 음식이 아니다. 그렇지만, 오랜 시간 낙엽과 공존하면서 곰팡이와 세균들 중에서 이것을 분해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진 놈들이 진화하여 오늘날에 이른 것이다. 챨스 다윈이 이라는 책에서 말했던 '자연선택'의 예이다. 즉 어떤 어려움이나 혹은 새로운 먹을 것들이 나타나면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주어진 먹이를 잘 분해할 수 있는 돌연변이가 생겨서 선택되어 나중에는 다수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을 땅에 버려도 쉽게 썩지 않는 이유는 이런 물질이 너무 생소해서 미생물이 분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예전에 없었던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자연에 버리면, 자연의 미생물들의 분해 능력이 진화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다. 같은 이유로 항생제에 저항성을 보이는 세균도 최근에 나타난 것으로 추정해왔다.
20세기 들어서 인간들이 세균을 죽이기 위해 항생제를 많이 사용하게 되고, 이것이 하나의 '선택 압력'으로 작용하여 항생제를 견디는 유전자를 가진 세균들이 많아졌다는 것이 기존의 이론이었다. 이 주장은 상당히 그럴싸해 보였다. 또 실제로 인간들이 항생제를 널리 사용한 이후에 이것에 내성을 지니는 세균들이 더 빈번히 발견되고, 최근에는 여러 가지 항생제에 동시에 저항성을 보이는 소위 '슈퍼 박테리아'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지난달 네이처 지에 발표된 논문은 이 상식을 뒤집어 버렸다. 드코스타 등의 연구진이 아주 오래된 세균을 찾아내어 그들의 유전자를 조사해 본 결과, 항생제에 내성을 나타내게 하는, 즉 항생제를 분해하는 유전자는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럼 이들은 오래 전의 세균을 어디에서 구했을까? 이 연구자들은 일 년 내내 땅이 얼어 있는 영구동토층에 주목했다. 미국 알래스카주 옆의 유콘강 유역 영구동토층 깊은 곳에서 3만 년 전에 매몰된 토양을 채취했다. 그 토양 속에서는 맘모스를 비롯해서 지금은 멸종해버린 생물들의 유전자가 다수 발견되었다. 여기서 채취해낸 미생물의 유전자를 분석해본 결과 놀랍게도 현대에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세균 유전자와 거의 유사한 것이 발견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유전자 정보를 토대로 단백질을 재구성해 본 결과, 항생제를 실제로 분해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즉 인간이 항생제를 마구 사용한지 100년도 안되었지만, 이 항생제를 분해할 수 있는 유전자는 이미 몇 만 년 전부터 미생물들이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사실 우리가 쓰고 있는 항생제는 자연에서 얻은 물질을 변형시킨 것으로 이미 수 십 만 년 전부터 자연에 존재했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 물질에 저항성을 가진 유전자도 오래 전부터 진화할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다. 단지 인간들이 항생제를 갑자기 많이 쓰게 되면서 이 유전자를 가진 세균이 급속히 선택되었고 또 널리 퍼지게 된 것일 뿐이다.
우리가 항생제를 남용하면 우리 몸 속 세균들의 내성이 생길 뿐 아니라, 항생제를 먹은 사람과 동물의 분변 등을 통해 일부가 자연계로 유출되고, 자연에 숨어있는 항생제 내성 세균들이 더 번성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무엇이든 과용은 문제를 일으키는 법이다.
강호정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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