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반군 세력 중 가장 오래 된 조직으로 꼽히는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의 최고지도자 알폰소 카노(63)가 4일(현지시간) 정부군에 사살됐다. 1964년 설립된 FARC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상류층에 치우친 정부를 타도하고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40여 년간 반정부 무장투쟁을 해 왔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후안 카를로스 핀손 콜롬비아 국방장관이 “4일 오전 남서부 카우카주에 있는 카노의 은신처를 폭격했다”며 “곧바로 특수작전부대가 진입해 총격전 끝에 카노를 사살했다”고 밝혔다고 5일 보도했다.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은 카노 사살 후 TV연설에서 “카노의 죽음은 FARC 역사상 가장 심각한 타격”이라며 “FARC가 해산하지 않으면 조직원들은 감옥에 가거나 무덤 신세를 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콜롬비아 정부는 카노의 트레이드마크인 턱수염을 깎은 시신의 사진을 언론에 공개하고 은신처에서 발견한 컴퓨터와 메모리 칩 등을 분석 중이다.
본명이 기예르모 레온 사엔스인 카노는 1948년 6월 수도 보고타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1968년 보고타국립대에 입학, 인류학을 전공하다 마르크시즘 등 정치 이론에 빠져든 그는 이후 공산당 청년단 수장이 됐다가 반정부 학생 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1970~80년대 수 차례 감옥 생활을 했다. 정부의 모스크바 망명 제안을 거부하고 FARC에 가입해 조직의 이론가로 활약한 카노는 FARC 고위 관계자의 눈에 띄어 초고속으로 지위가 올라갔다. 2008년 3월 FARC 창설자 마누엘 마루란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한 뒤에는 최고지도자에 올랐다.
FARC는 1985년 정부와 교섭 끝에 정전에 합의하고 합법적인 정당을 조직, 한때 정치활동에 전념하기도 했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FARC는 마약밀매 등을 통해 조직 운영자금을 조달하는가 하면 80년대 중반부터는 수감된 조직원의 석방교섭에 활용하기 위해 정치인과 민간인을 납치해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 콜롬비아 정부는 학살과 약탈 등의 혐의로 카노의 목에 현상금 370만달러를 걸어 둔 상태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카노의 죽음이 콜롬비아 국민에게 반세기 가량 이어진 내전이 끝날 수 있다는 희망감을 주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당장 극적인 변화가 생길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FARC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거점을 둔 뉴스통신사 안콜에 낸 성명에서 산토스 대통령의 해산 명령을 거부하고 무장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며 강경대응 방침을 밝혔다. 안보 전문가인 알프레도 랑헬은 “단기적으로 리더십의 공백은 있겠지만 FARC의 차기 지도자가 카노와 반대 전략을 펼치지는 않을 것”이라며 “FARC는 산악지대와 정글 등 은신처를 중심으로 게릴라전을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