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이 다시 이탈리아로 넘어갔다. 총리의 국민투표 제안으로 촉발된 그리스발 위기가 잦아들면서 이탈리아가 유로존 전체의 안정 여부를 가늠할 변수로 급속히 떠오르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5일(현지시간) “그리스 재정위기가 유로존의 골칫거리였다면 이탈리아는 글로벌 경제의 재앙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4일 폐막한 주요20개국(G20) 회의에서도 각국 정상은 이탈리아에 관심을 보였다. 이탈리아 정부가 지난주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국유자산 매각 확대, 노동법 개선 등 추가 경제개혁안을 약속했지만 실행 의지를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이탈리아는 (재정적자 감축 계획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확신을 줘야 한다”고 했다.
G20의 우려는 시장의 불안감과 궤를 같이한다. 이날 이탈리아의 10년 만기 국채유통 수익률은 6.43%까지 상승, 유로존 출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통상 국채금리가 7% 이상이면 금리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구제금융이 필요한 것으로 본다.
이탈리아의 국가채무는 1조9,000억유로로 유로존 국가 중 규모 면에서 가장 많다. 이 가운데 그리스 총부채와 맞먹는 3,000억유로의 부채를 내년에 상환하거나 기한연장해야 한다. 채무위기의 충격파가 그리스에 비할 바가 아닌 셈이다.
G20 정상들은 이런 상황을 감안, 이탈리아에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한 자금 지원을 제안했다. EU 차원에서 더 이상 위기 전염을 막을 방도가 없자 최후 수단으로 IMF를 동원한 것이다.
그러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필요하지 않다”며 제안을 단호히 거부했다. IMF의 자금을 받아들이면 IMF가 재정ㆍ통화정책을 좌지우지해 사실상 경제주권을 내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대신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국제사회의 압박에 못이겨 “긴축재정안의 실행 여부에 대해 IMF의 감시를 받겠다”고 밝혔다. 비록 “이탈리아 스스로 IMF에 감시를 요청했다”(바호주 EU 집행위원장)는 자발적 초청 형식을 취했지만, 이탈리아는 앞으로 3개월마다 정부자산 매각과 연금 개혁에 관해 실사를 받는 등 EU와 IMF의 간섭에 시달려야 한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IMF가 베를루스코니의 보모가 됐다”고 평했다.
이탈리아 국채를 대거 사주며 소방수 역할을 자임했던 유럽중앙은행(ECB)도 인내심에 한계를 드러냈다. 이브 메르시 ECB 정책이사는 6일 “ECB는 이탈리아의 ‘최후의 대부’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언제든 이탈리아 국채매입을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CB는 8월 국채매입프로그램(SMP)을 재개해 총 1,000억유로의 유로존 국채를 매입했는데 이 중 70%를 이탈리아 국채에 쏟아 부었다.
이처럼 이탈리아를 향한 국제사회의 의구심은 정부의 신뢰 부족에 기인하고 있으나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정치적 입지는 도통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AP통신은 5일 ”수도 로마 도심에서 야당 지지자 수만명이 총리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했다”고 보도했다. 베를루스코니는 사퇴를 거부한 채 “2주 안에 의회의 재신임을 받아 개혁정책을 추진하겠다”며 다시 한번 신임투표 카드를 꺼냈지만 여당 내부에서도 반발 움직임이 확산되는 등 재신임을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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