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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쇼 무대 오른 뇌성마비 2급 이유경씨/ 한발 한발…그녀의 워킹은 희망을 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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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쇼 무대 오른 뇌성마비 2급 이유경씨/ 한발 한발…그녀의 워킹은 희망을 향하다

입력
2011.11.0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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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화려한 조명에 눈이 부신지 아니면 쑥스러운지 고개를 숙였다. 강당을 메운 100여명의 관객들도 그녀가 첫발을 떼는 순간 매우 긴장돼 보였다. 조금 절뚝거리며 어렵게 첫발을 뗀 그녀는 이내 느리지만 자신감 있게 발걸음을 옮겼고 턴 동작까지 소화했다.

1분 남짓 시간 동안 온 신경을 곤두세웠는지 얼굴은 어느새 땀으로 가득해 화장이 번지고 지워졌다. 긴장이 역력했던 표정도 끝 무렵엔 환한 웃음으로 변했다. 그녀가 걸었던 거리는 불과 10m. 하지만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뜻 깊은 워킹이었다.

뇌성마비 2급 장애인인 이유경(27)씨가 오랫동안 품었던 패션모델의 꿈을 이뤘다. 4일 오후 서울 강서구 방화동 강서뇌성마비복지관 강당에서 열린 서울호서전문학교 피부미용과 학생들의 졸업작품전 '호서 재능나눔 Festival' 네일아트쇼 무대를 통해서다.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를 앓았던 이씨는 패션쇼 무대에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으며 멋진 모습을 뽐내는 모델이 어릴 적 꿈이었다. 하지만 자기 뜻대로 몸을 가누기도 힘들다 보니 주위에 그 꿈을 당당히 이야기하지 못했다. 이씨는 "평소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아기자기한 것에 관심이 많아 네일아트를 좋아하게 됐다"며 "한 달 동안 매일 워킹 연습을 하면서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수줍게 웃었다.

방화동에서 시각장애인 아버지, 식당 일을 하는 어머니와 함께 사는 이씨는 일반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과 장애 때문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복지관에서 컴퓨터 교육을 받으며 파워포인트 자격증을 땄고 지금은 1주일에 세 번씩 포토샵을 통해 온라인쇼핑몰에 사진을 올리는 아르바이트 일도 하고 있다.

이씨가 패션쇼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것은 2년 넘게 복지관에서 네일아트와 발 마사지 봉사를 해온 서울호서전문학교 피부미용과 학생들의 덕이 컸다. 황해정 서울호서전문학교 피부미용과 학과장은 "매주 금요일마다 5시간씩 학생들이 복지관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해왔는데 네일아트나 마사지는 손을 맞잡고 하는 일이라서 장애인들과 서로 마음을 열게 됐다"며 "학생들이 졸업작품전을 의미 있게 열고 싶다고 해서 이런 행사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두피 마사지, 발 마사지, 네일아트, 페이스페인팅 등 13개 체험 부스 운영이 끝난 뒤 시작된 패션쇼에서 이씨는 일본 전통의상을 입고 마지막 8번째 모델로 무대에 섰다. 앞서 워킹을 한 모델들처럼 성큼성큼 맵시 있게 걷지 못했지만 어느 모델보다 더 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이씨는 "뇌성마비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어요. 나도 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래요"라며 밝게 웃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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