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워크/E F 슈마허 지음·박혜영 옮김/느린걸음 발행·265쪽·1만5,000원
한 경제학자가 일요일 오후 산책하다 하느님과 마주쳤다. 충격으로 잠시 말문을 잃은 그는 인간에게 1,000년은 하느님에게 1분이라는 옛 이야기가 떠올라 그걸 물었다. 하느님은 "그럼, 그렇고 말고" 하고 답했다. 좀 진정한 그는 다시 물었다. "그럼 인간에게 100만 파운드도 하느님께는 1페니에 지나지 않겠네요." "그럼, 그렇고 말고." 문답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럼 제게 1페니만 주시면 안 될까요." "주고말고 아들아. 그런데 지금은 없으니 내가 가져올 동안 1분만 기다려라."
<작은 것이 아름답다> 로 잘 알려진 독일계 영국경제학자 슈마허가 말년에 미국 횡단 강연 때 한 이야기다. 슈마허가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국민총생산(GNP)이 늘어나면 모두가 구원받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좀 어려워도 참고 기다리라는 것이 허구임을 말하기 위해서였다. GNP란 경제에서 일정량의 자금 흐름을 기술적으로 가늠하기 위해 유용하지 어떤 식의 성취를 보여주는 지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진정한 성장은 내용의 문제이지 숫자가 아니라는 소리다. 작은>
<굿 워크> 는 슈마허의 이 미국 강연 내용을 묶어 사후 출간된, 그의 사상의 핵심을 요약한 책이다.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넘었지만 불교와 가톨릭 사상에 공명한 그의 경제학이, 또 그 경제학을 토대로 세상을 바꾸려 한 그의 실천이 얼마나 시대를 앞선 통찰로 빛나는지 새삼 실감케 한다. 굿>
그의 미국 비판을 들어 보자. 1970년대 중반 미국의 1인당 평균소득은 영국이나 서유럽보다 2배나 많지만 다수의 미국인들은 유럽보다 훨씬 더 비참한 빈곤에 시달린다고 했다. 세계 인구의 5~6% 지나지 않는 미국인들이 전 세계 천연자원 생산량의 35%를 사용하고 있지만 행복하지 않다. 부가 특정한 곳에 쌓여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전형으로 지목해 그가 비판하려는 것은 현대산업주의이다. 현대산업주의는 값싼(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지만) 화석연료 덕분에 4가지 방향에서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고 슈마허는 비판했다. 기업이든 자본이든 모든 것이 점점 더 커지고 있고, 물건을 더 복잡하게 만들며, 생산에 드는 자본비용의 증가로 무슨 일을 하려면 부자거나 세력가가 돼야 하며, 기술이 자연 파괴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오로지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표인 산업주의는 그 과정에서 인간을 기계로 만들고 있다.
사회의 불평등을 개선해 나가고 또 진정한 노동을 되찾기 위해 그는 '작고, 간단하게, 자본이 적게 들며 (자연에 대해)비폭력적인 기술'의 개발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기업은 인간적 접촉이 가능하도록 적절한 소규모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노동자의 자본 소유와 경영 참가가 폭넓게 보장되어야 하고 이익의 일부는 노사 동의 아래 필수적으로 환원해야 한다. 과학기술도 상위 10%를 위한 고도화보다 나머지 90% 다수를 위해 필요한 방향으로 하향 조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를 개념화한 것이 슈마허의 '중간(또는 적정)기술'이다.
영국 등 해외에서는 슈마허의 탄생 100년을 맞아 그의 저서를 재출간하는 등 재조명 움직임이 활발하다. "자본주의 이대로는 안 된다"는 구호가 전세계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한데, 국내에서는 이 책 출간 말고는 눈에 띄는 움직임이 없다. 물론 대표작 <작은 것이 아름답다> 를 비롯해 <당혹한 이들을 위한 안내서> <자발적 가난> <내가 믿는 세상> 등 슈마허의 책들은 대부분 국내에 번역돼 있으니 이 책들을 더 찾아 읽을 수 있다. 내가> 자발적> 당혹한> 작은>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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