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가 흥미로운 사실과 참신한 상상력으로 한글 창제과정에 폭넓은 관심을 일으키고 있다. 극중 집현전 학사 윤필이 살해되면서 남긴 수수께끼 같은 네 글자 '군나미욕(君那彌欲)'만 해도 그렇다.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이 네 글자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을 한껏 끌어올린 후 그것이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임을 세종대왕의 대사로 알려준다. 극중 대사는 'ㄱ은 아음(牙音)이니 군(君)자의 첫 발성과 같고, ㄴ은 설음(舌音)이니 나(那)자의 첫 발성과 같고…'하는 훈민정음 해례본 제자해의 내용을 토대로 한 것이다. 뿌리깊은>
■ 그런데 'ㄱ' 'ㄴ' 같은 한글 자모의 형상은 어디서 온 것일까. 세종이 비밀스러운 훈민정음 제자 작업을 성삼문 등에게 밝히는 극적인 장면은 여러 갈래의 상상을 새삼 자극한다. 훈민정음 해례본엔 발음기관의 모양을 상형했다고 나온다. '어금니 소리(아음) ㄱ 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본뜨고, 혓소리(설음)인 ㄴ은 혀가 윗잇몸에 닿는 모양을 본뜨고…' 하는 식이다. 최근 국내에 번역된 <한글의 탄생> 에서 일본인 저자 노마 히데키씨는 이를 두고 "소리가 문자가 되는 시스템"이라며 "세계 문자사의 기적"이라고 극찬했다. 한글의>
■ 하지만 창조엔 대개 아이디어의 원형이 있는 법. 이 부분에 대해 <세종실록> 엔 "제자의 원리는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뜨고, 글자체는 옛글자를 모방했다(자방고전ㆍ字倣古篆)"는 정인지의 언급이 있고, 한글 창제에 반대했던 최만리의 상소문에도 "원문은 다 옛글자를 본뜬 것"이라는 대목이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문헌에 나온 '옛글자'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글 자모와 형태가 거의 유사한 매우 흥미로운 고대문자가 전해지는데, 그게 바로 <단군세기(檀君世記)> 에 나오는 가림토(加臨土)문자다. 단군세기(檀君世記)> 세종실록>
■ 고려 때의 석학 이암(1297~1367) 선생이 지은 이 책엔 가림토문자가 3세 단군인 가륵(嘉勒) 단군이 기원전 2181년에 삼랑(三郞) 을보륵(乙普勒)에게 명해 제정한 38자라고 전한다. 일부 재야 연구자들은 한글 자모의 형상과 모음 제자 원리의 유사성 등을 들어 가림토문자를 한글 28자 형상의 뿌리로 믿고 있다. 하지만 주류 학계에선 <단군세기> 등 4대 고사서를 모아 편집한 상고역사서 <한단고기> 자체를 위작으로 보고 있어 가림토문자 역시 정설로 편입되지 못한 게 현실이다. 그래도 TV 드라마가 우리말의 기원에 관해 아득한 고대사를 새삼 더듬어 볼 기회를 줬다는 게 즐겁다. 한단고기> 단군세기>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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