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끄트머리에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나란히 붙어 있다. 두 학교 다 개교 10년 미만으로 아파트 단지 아이들이 주로 다니는 학교다. 본 상가와는 떨어져 영어교실, 떡볶이집, 피자를 겸한 제과점과 문구·팬시 체인점 '통큰딱따구리' 이렇게 네 개 가게가 학교 맞은편에 늘어서 있다. 통큰딱따구리 자리는 이전에도 이름 생각나지 않는 문구점이 두 번 들어왔었다. 통큰딱따구리는 세 번째 문구점이다. 초·중등학교 두 개나 있는데, 왜 그전 문구점이 둘이나 그만두고 세 번씩이나 바뀌는지 의아하긴 했으나 별 관심은 두지 않았다.
학교 쪽 길로 내려가야 하는 볼일이 생겼다. 가게들 맞은편에 이르렀을 때 건너편에 의당 있으려니 했던 통큰딱따구리가 뭔가 이상했다. 뭐지? 이상하게 멍한 통큰딱따구리의 속. 밖에 진열해 놓은 온갖 물품들은 다 어디로 간 거야. 축구공, 훌라후프, 줄줄이 매달린 붉은 뚱돼지저금통들은? 나도 모르게 멈춰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 멍한 속이 왜 나를 이리 들여다보는지를. 이해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면 웃겠지. 정말 시간이 좀 걸렸다. 아무래도 나,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는 인간인갑다.
통큰딱따구리는 날아갔다. 통큰딱다구리도 결국 날아간 것이다. 속을 터엉 깨끗이 비우고는 자신의 본향으로 날아간 것이다. 없어진 것, 문닫은 것, 이사간 것이 아닌 산속 하늘로 돌아간 것이다. 딱따구리니까. 새니까. 처음엔 부윰한 유리창의 반사로 텅 빈 그 속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그 멍한 속을 이해하려고 했던 짧은 틈새를 비집고 또 날아온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시'라는 새. 이렇게 시의 틈입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리자 씁쓰름해지며 쓸쓸함이 몸을 돌았다. 숲속의 딱따구리가 날아간 자리에 붉은 플라스틱 뚱돼지저금통만큼도 재미없는 시가 날아와 앉는 일은 그렇고 그런 시시한 일.
콘크리트의 고밀한 아파트단지라도 늦가을의 정취가 없진 않다. 나름 애써 물들은 나무들과 떨어진 나뭇잎, 파란 하늘도 계속되니 문방구점 하나 없어진 일에다 별놈의 비약을 다해 시까지 끌어온다. 내가 가을을 타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런데 통큰딱따구리, 정말 통 크게 장사해 말아먹은 것일까. 아니면 이름만 그렇지 10원을 20원을 따지며 쩨쩨하게 굴었을까. 통 크다 해봤자 1,000원이요 2,000원이요 하는 놀음이었을 텐데 그런 놀음에도 죽지는 떨어지는 것일까. 모두들 체감하듯 벌어먹기 힘든 세상이어서 도리가 없었던 것일까. 학교 앞이라면 통큰딱따구리로서는 제대로 보금자리 찾아든 건데, 애초 보금자리란 이 세상에 없는 것일까. 꼭대기에 칠판만 하게 크게 붙인 간판은 왜 그대로 남겨두고 갔나. 곧 겨울 닥치면 찬 비바람에 그 이름 떨어질 테고, 이름 아무렇게나 거리에 굴러다니겠지.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속이 있어야 한다는 뜻일까. 우리 모두는 날아가면(죽으면) 그뿐, 생전의 자기 이름이란 죽음은 모르는 일이리.
멍텅한 동굴이 된 통큰딱따구리 앞에서 쓸쓸하였지만 나의 현재를 잊어먹지는 않았다. 남편 하나 아이 하나한테만 딱딱거리며 사는, 통이라고는 밥통밖에 모르는 나도 딱따구리과임을. 통 작은 딱따구리. 또 스르르 저녁 밥통 속으로나 스며들어갈 나를 두고 통큰딱따구리는 아무 면박도 주지 않고 갔다. 너는 딱따구리도 뭣도 아니다라고 아픈 소리 하지 않고 갔다. 한번 편 날개 접는 결단은 결코 쉽지 않은 일. 통 큰 태생이 아니라면 아무나 못하는 일. 아파트 끄트머리 아이들이 지절대던 곳, 통큰딱따구리가 날개를 접고 날아갔네. 통큰딱따구리가 이곳을 뜨면서 나 같은 딱따구리에게 전언을 남겼을 리는 없지만, 나는 표정없이 이런 전언을 듣네. 너는 이곳에서 살아라.
이진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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