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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실게요'라는 말 듣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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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실게요'라는 말 듣기 싫다

입력
2011.11.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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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글은 참 어렵다. 맞춤법, 띄어쓰기도 어렵고 붙여쓰기도 쉽지 않다. 띄어쓰기와 붙여쓰기는 반대되는 말이지만, '띄어'와 '붙여'를 '쓰기'와 띄어서 쓰면 틀린다. 처음 내리는 눈은 왜 '첫눈'이라고 붙여서 써야 하는지, 언제 하나의 단어로 굳어졌는지, '그 사람'은 왜 띄어 쓰고 '그분'은 왜 붙여 쓰는지도 얼른 알기 어렵다. 그런 것들은 수도 없이 많다.

어법ㆍ문법 파괴하는 접객어들

말도 어렵다. 특히 우리 말은 경어가 잘 발달돼 있어 존대가 잘못되면 감정을 사고, 지나치면 어색하다. 어머니의 표정이 좋지 않을 때 좋지 않네, 좋지 않으시네, 좋으시지 않으시네, 좋으시지 않네, 이렇게 네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용언(用言)이 여러 개일 때는 마지막 용언을 높이는 게 관례이므로 이 경우 '좋지 않으시네'가 가장 맞는 표현이라고 한다. 국립국어원의 설명에 따르면 모든 용언에 '-시'를 넣는 건 자연스럽지 않으며 지나친 존대는 되레 예의가 아니다.

국립국어원이 2일 개최한 '표준화법 보완을 위한 토론회'에서도 이 존경법 선어말 어미'-시'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백화점 시장에서 흔히 듣게 되는 "이 구두는 볼이 넓으셔서 발이 편하세요." "그 상품 품절되셨어요."투의 말이다. 존대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사물에 '-시'를 붙이는 것은 잘못이다. 국어원이 토론회를 위해 국어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사물에 대한 존대를 어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60%였다. 60%밖에 안 된다는 것이 오히려 놀랍다.

'시간+되세요'도 널리 번져 국어를 오염시키고 있다. "즐거운 하루(쇼핑, 휴가) 되세요"는 듣는 사람이 '즐거운 하루(쇼핑, 휴가)' 자체가 될 수 없는 데다 어색한 영어식 표현인데도 널리 쓰이고 있다. 백화점에서 선물을 샀을 때 "좋은 선물 되세요"라는 인사를 들은 적도 있다. 놀라운 것은 이런 말투가 자연스럽다 48.3%, 자연스럽지 않지만 쓸 수 있다 18.6%로, 70% 가까운 사람들이 호의적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영어 그대로인 "좋은 시간 가지세요(Have a good time)"라는 인사도 머지않아 나올 판이다.

국립국어원은 2009~2010년에 실태 조사를 하고, 전문가 자문위원회를 10차례 열어 논의한 뒤, 예절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언어 현실을 반영하는 화법을 마련하기 위해 토론회를 열었다고 한다. 그런데 토론회에서는 아쉽게도 '-실게요'라는 말투에 대한 논의가 빠졌다. "이리 오실게요", "돌아서 누우실게요"등등 병원에서든 음식점에서든 요즘 수없이 듣게 되는'극존칭 명령성 청유형 어법'말이다.

이런 이상한 말을 만들어 쓰는 이유는 그냥 "이리 오세요"라고 하면 강압적으로 명령하는 것 같고, 나이 많은 어르신들에게 죄송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간호사에게 그렇게 말하는 건 잘못이라고 지적했더니 원장인 여의사가 기껏"맞아요. 우리 말이 참 이상하지요?"라고 한 적도 있다. 그 말이 이상하거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적고, 오히려 그렇게 말하도록 권장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어떤 형태로든지 손님을 받는 접객업소에서는 호감을 사기 위해 경쟁적으로 노력한다. 그래서 종사자들의 태도와 복장 말씨를 늘 교육하는데, 그 교육이 문법과 어법을 파괴하고 국어생활 발전을 해치는 것이라면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국립국어원이 맨 먼저 할 일

어떤 업종의 카페에 올라 있는 표준화법에 '세안법'이라는 항목이 있었다. '손님에게 무슨 요리를 세안할지 미리 생각해 두라'는 내용이었는데, 그 말이 細案, 즉'꼼꼼하고 자세하여 빈틈이 없는 안건'이라는 걸 한참 만에야 알 수 있었다. 손님을 잘 모시는 데는 공손한 마음과 태도, 정확한 어법이 중요하지 지나친 존대나 한자 위주의 어법이 필요한 게 아니다.

국립국어원은 1992년 이래 거의 20년 만에 새로 표준화법안을 마련해 국어심의희 심의를 거친 뒤 널리 보급할 계획이라고 한다. 다른 것도 급하겠지만, 사람들의 접촉빈도가 높은 접객어 부문부터 표준화법을 만들어 두루 잘 사용하게 했으면 좋겠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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