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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미슐랭 별 셋 셰프 호안 로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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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미슐랭 별 셋 셰프 호안 로카 인터뷰

입력
2011.11.03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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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도 예술이라는 말, 괜히 나온 게 아닌 것 같다. 과학과 예술의 황홀한 만남이라는 표현도, 그의 요리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저절로 떠오른다. 세계적 레스토랑 평가서인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최고 등급인 별 셋을 받은 스페인 셰프 호안 로카(Joan Roca). 영국 요리 월간지 '산 펠레그리노 세계 최고 레스토랑 50'이 올해 세계 2위 레스토랑으로 선정한 '엘 세예 데 칸 로카'의 셰프로, 과학을 통해 전통과 현대를 결합한 스페인 카탈루냐 요리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서울 고메 2011(Seoul Gourmet 2011)' 참석차 한국을 찾은 그를 2일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 문화홀에서 열린 마스터클래스 현장에서 만났다.

과학이 열어준 요리의 창의적 세계

그의 요리에서 창의성은 처음이자 끝이다. 스페인이 최근 세계 미식계를 주름잡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도, 그의 식당 '엘 세예 데 칸 로카'가 세계적 레스토랑으로 자리매김한 비결을 묻는 질문에도 그는 단연 창의성을 꼽았다.

"창의성이라는 건 전달하기는 쉽지 않죠. 하지만 일단 특별한 것을 만들어 바깥으로 내보내기 시작하면 세계화를 위해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어요. 그리고 그 창의성의 세계를 열어줄 수 있는 무기는 바로 과학이에요."

그를 오늘날 세계적 셰프로 만든 데는 진공저온조리법인 수비드(Sous-vide)와 분자요리(Molecular Gastronomy) 기법이 큰 몫을 했다. 그래서 액체질소와 증류기, 불꽃 점화기에 특수 제작된 요리도구들이 즐비한 그의 주방은 주방이라기보다 물리학자나 화학자의 실험실에 가깝다. 서울고메의 장 피에르 가브리엘 컨설턴트가 "그의 식당은 식당이라기보다 창의성 실험실"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로카 셰프는 수비드가 제대로만 사용하면 수도 없이 많은 장점을 뽑아낼 수 있는 최고의 조리법이라고 강조했다. 진공 포장한 재료를 100도 미만의 저온에서 장시간 요리하는 수비드는 지방 손실을 최소화할 뿐 아니라 양념의 삼투압 작용으로 맛과 질감이 부드러워지는 게 특징. 바싹 건조시킨 우유거품을 곁들인 넙치 요리를 만들면서 포 뜬 넙치를 랩으로 진공 포장한 후 55도에서 5분간 익히고 다시 숯불에 굽는다. 돼지뼈와 양파로 만든 육수 소스에 얹을 어린 돼지의 살코기는 63도에서 24시간 익힌다. 손은 많이 가지만 이렇게 하면 육즙이 마르지 않고 곁들인 재료의 향이 자연스럽게 요리에 배어드는 장점이 있다.

분자의 구조에 따라 음식의 맛과 향이 달라지는 점을 이용해 과학적으로 식재료의 성질과 상태를 변형시키는 분자요리도 그의 특기. 차갑고 신선한 느낌을 주기 위해 만든 멜론 요리를 보자. 유칼립투스 잎을 증류기에 넣어 저온에서 증류시킨 후 냉장보관 한다. 이 액을 손님 테이블로 가져가 영하 18도로 얼린 멜론 위에 뿌린다. 그러면 액체는 급속히 열을 뺏기면서 멜론에 닿는 즉시 얼음탑처럼 변한다. 물리적으로는 매우 간단한 기법이지만, 식탁 위에서 보고 있노라면 이보다 상쾌하고 청량할 수 없다.

"지금까지 요리의 역사는 계속 진화해왔습니다. 그건 인간이 과학과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우리는 과학을 통해 더 많은 테크닉 얻을 수 있었어요. 사실 과학적으로 요리하고 공부하는 게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특별한 요리를 하려면 감수해야만 해요."

유머와 대화의 팀워크가 빚어낸 최고의 레스토랑

스페인 북부 카탈루냐 지방의 작은 도시 지로나에 있는 그의 식당은 삼형제가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첫째인 그가 요리를 담당하고, 둘째인 호셉 로카는 소믈리에, 막내인 호르디 로카는 디저트 셰프로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식당을 운영하는 부모의 영향을 받아 11세에 요리에 발을 들인 그는 1986년 두 동생과 함께 부모의 식당 옆에 개업했다. 그의 부모는 지금도 삼형제가 새로 개발하는 모든 메뉴의 첫 번째 시식자이다.

"저희 삼형제는 굉장히 서로를 잘 이해해요. 일하는 방식이 서로 비슷하고, 일에 균형이 잘 잡혀 있죠. 늘 대화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하기 때문에 25년간이나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거고요. 어떨 때는 두 명이 한 명을 설득해야 할 때도 있고, 다른 때는 한 명이 두 명을 설득해야 하기도 하지만, 결론은 늘 나요."

이들 형제의 창의성에 영감을 주는 요인은 매우 다양하지만, 스페인 사람답게 와인과 축구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와인 뚜껑을 따고 맡는 첫 내음에서 '아, 이런 요리를 만들어봐야겠다' 영감이 솟구치기도 하고, 어떤 때는 FC 바르셀로나의 메시가 슛을 넣을 때의 환희와 열광이 요리의 주재료가 되기도 한다.

최근 만든 디저트 중 하나는 메시가 골을 넣기까지의 경로를 축구장 위에 재현해놓은 요리. 축구공 패턴의 반구형 그릇에 잔디를 깔고 그 안에 음식 접시를 넣는다. 접시 위에는 흰 그물 모양의 과자를 얹는데, 축구공을 상징하는 흰 머랭이 이리 저리 굴러다니다가 그물을 부수고 그릇 안으로 똑 떨어진다. 그러면 그 안에 과일 등 다양한 재료의 디저트가 나온다.

"식당에서는 이때 손님 테이블로 아이팟을 가져다 드려요. 메시의 골 장면을 목청 높여 설명하는 해설자의 목소리가 나오는 거죠. 이런 게 바로 우리 삶에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유머라는 중요한 덕목이죠."

한식은 반드시 세계화될 것

한국 방문이 처음인 로카 셰프는 한국에 대해 꽤 좋은 인상을 받은 것 같았다. "온 지 며칠 안 됐고, 일 때문에 온 거지만 조만간 다시 여행을 오고 싶을 정도로 정말 마음에 든다"며 인터뷰 내내 한식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 음식의 다양성과 맛이 아주 마음에 들어요. 특히 나물의 다양함에 놀랐습니다. 발효음식 기술도 인상적이고요. 김밥, 비빔밥 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인데, 너무 새롭고 맛있어요."

서울고메는 한식 세계화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한식을 해외에 홍보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지만, 지난해에는 김치 등 발효음식을 지나치게 강조해 거부감을 보인 셰프도 없지 않았다. 뉴욕타임스에는 "발효음식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너무 강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한 셰프의 발언이 실리기도 했다. 하지만 로카 셰프는 "음식이란 개성이 강할수록 좋은 것"이라며 "한국음식의 특징이 확실하게 있기 때문에 오히려 앞으로 세계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국음식이 앞으로 세계화될 것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려면 한국식당이 전 세계에 더 많이 생겨서 한식을 널리 알릴 수 있어야겠죠."

세계적 셰프의 세 끼 밥상은 어떻게 차려질까? 이 질문에 그는 웃음부터 터뜨리며 "아주 간단한 요리를 해먹는다"고 답했다. "간단하면서도 건강에 좋은 음식,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요리해 먹죠. 아이들도 뭘 먹고 싶은지 대화하면서 함께 요리해요. 우리 가족에겐 요리가 대화의 중요한 방편이에요."

미각을 보존하기 위해 담배는 절대 피우지 않는다는 그는 셰프에게는 무엇보다도 맛과 냄새를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의식적으로 맛과 냄새를 외우려고 애쓰다 보면 무의식의 창고에 저장되고, 그게 언젠가는 다시 기억의 표면으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이번 방한 기간에 접한 한국의 나물과 비빔밥, 된장이 어떻게 그의 수비드, 분자요리와 만나게 될지 자못 궁금해지는 이유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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