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2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도청 의혹 사건의 실체를 밝히지 못한 채 수사를 마무리하자 시민들은 "경찰의 무능력한 수사 능력이 또 드러났다"는 반응이다. 정치권과 KBS의 눈치만 살피다 뒷북 수사로 의혹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선 경찰의 늑장 수사가 문제로 지적된다. 이 사건은 6월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이 하루 전 열린 KBS 수신료 인상 관련 민주당 회의록 발언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시작됐다. 민주당은 "도청한 게 아니냐"며 발끈했고, 경찰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그러나 6월 26일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열흘이 지난 7월 8일에야 도청 당사자라는 의혹을 산 KBS 정치부 장모 기자의 자택을 압수 수색했다.
안동현 영등포경찰서 수사과장은 "수사에 착수했을 때만 해도 용의자로 특정된 사람이 없었다. 탐문 수사 과정에서 용의자를 특정해 압수수색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때 압수한 휴대폰과 노트북 PC는 사건 이후 이미 교체된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경찰이 도청의 결정적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벌어줬다는 비판을 받는 대목이다.
결정적 증거에 관한 수사도 허술했다. 장 기자는 경찰 소환 조사에서 "27일(경찰 수사 착수 다음날) 술을 마신 후 택시에서 문제의 휴대폰과 노트북PC를 잃어버렸다"고 했지만 KBS에 제출된 손망실 보고서에는 술 마시러 가는 길에 잃어버린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또 값비싼 휴대폰과 노트북PC를 잃어버리고 경찰서에 분실 신고조차 하지 않은 대목도 의문이다. 그러나 경찰은 이런 의문을 제대로 파고 들지 못했다. 애초부터 수사 의지가 부족했다는 말을 듣는 이유다.
첫 단추를 잘못 꿰다 보니 이후 수사도 엉망이었다. 경찰은 8월 초 KBS 정치부기자 3명에 대한 휴대폰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검찰과 법원에서 기각 당하는 망신을 당했다.
여당 눈치 보기 수사도 도마에 올랐다. 안 수사과장은 한 의원을 소환 조사하지 않은 데 대해 "국회 회기 중에 현역 의원을 강제 구인하는 데 법적인 한계가 있었다"며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도청 수사가 한창 진행되던 7월은 국회가 열리지 않아 강제 소환도 가능했지만 경찰은 움직이지 않았다.
사건 고발 당사자인 한 의원을 상대로 통상 참고인에게나 예외적으로 하는 서면조사를 한 것도 지적 받는 대목이다.
경찰은 또 "문광위 회의 시작 전 처음 보는 사람으로부터 문건을 받았을 뿐 도청 여부는 알지 못했다"는 한 의원의 황당한 서면 답변을 문제삼지 않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수사 과정과 결과가 이렇다 보니 "KBS와 한 의원에 대한 면죄부 수사로 의혹만 키웠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 나였다"(민주언론시민연합)는 비판이 이어졌다. 언론노조 KBS본부도 "사측을 제외하곤 누구도 KBS가 이제 도청 의혹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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