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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인터뷰] 봉은사 떠난 지 1년… 불교계의 '강남 좌파' 명진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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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인터뷰] 봉은사 떠난 지 1년… 불교계의 '강남 좌파' 명진 스님

입력
2011.11.02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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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明盡ㆍ61) 스님의 이름에는 '운동권 스님'이니, '강남 좌파 스님'이니 하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스님이 봉은사 사태로 서울을 떠난 지 어느덧 1년. 스님은 지금 충북 제천 월악산 기슭의 보광암이라는 조그만 암자에 머물고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에 잠깐 다니러 온 스님을 그가 만든 수행모임인 '단지불회(但知不會)'의 남산 사무실에서 만났다. "일의일발칠가식(一衣一鉢七家食ㆍ가사 한 벌, 발우 하나에 일곱 집서 탁발한 음식으로 생활)으로 소유욕에서 벗어나 청정하게 사는 게 진정한 출가인의 모습"이라면서도 스님은 3시간이 넘는 인터뷰 내내 걸쭉한 입담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에 매섭게 죽비(竹扉)를 들었다.

-지난해 한 조사에서 네티즌들이 우리 시대 가장 신뢰받는 종교 지도자로 뽑았는데.

"신뢰도에도 등수를 매길 수 있나요? 저는 그게 어색해요. 이해도 안 되고. MB에게 욕 잘하는 사람 1등이라면 모르겠지만. 그 타이틀은 누구에게도 내주고 싶지 않네요."

-봉은사 사태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네요. 우선 '운동권 스님'이 어떻게 서울 강남 한복판의 봉은사 주지를 맡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제가 봉은사 주지를 맡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2006년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 때 떨어진 정련 스님 편에 섰었으니까요. 그런데 오히려 제가 선거 때 신랄하게 비판한 지관 총무원장 스님이 '봉은사를 제대로 지킬 사람은 명진밖에 없다'며 저에게 봉은사를 맡겼어요. 참 훌륭한 분이시죠. 저는 한국 불교를 개혁하려면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는 봉은사부터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그 제안을 수락했고요. 어디 한번 인생을 걸어보자 싶었죠."

-봉은사 주지 시절 천일기도와 재정 공개로 신선한 충격을 던지셨지요.

"강남은 원래 보수 성향이 강한데, 불교 신도들은 특히 더 그래요. 그러니 '좌파 운동권'으로 찍힌 저 같은 사람이 주지로 갔을 때 얼마나 반응이 냉랭했겠어요. 신도들이 저와 마주쳐도 합장도 하지 않은 채 곁눈으로 흘끔거리면서 지나쳤어요. 그래서 1,000일 동안 1,000번씩 절을 올리는 천일기도를 시작했죠. 신도들 사이에서 '얼마나 해먹으려고 저렇게 쇼를 하냐'며 말들이 많았어요. 재정 공개도 파격적이었죠. 가만히 보니 큰 절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싸움과 불미스러운 사건은 대개 돈이 발단이더군요. 그래서 재정을 공개했죠. 덕분에 2006년 취임 당시 80억원대이던 예산이 2010년 136억원대로 크게 늘어났어요. 불전함(佛錢函) 열쇠도 신도들에게 맡겼어요. 그 전까지 시줏돈은 주지의 용채(용돈)나 마찬가지였거든요. 덕분에 '운동권 스님'이 주지로 왔다고 마뜩잖게 여기던 신도들도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죠. "

-그런데 왜 조계종이 갑자기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지정한 건가요?

"한마디로 제가 개혁에 실패한 조광조였던 거죠. 한국 불교계를 바꿔보겠다는 열망으로 봉은사를 맡았는데, 결국 이루지 못했어요. 다른 스님들과 템포를 맞추며 함께 가질 못했죠. '나는 잘한다'는 아만(我慢)도 있었고요."

-당시 봉은사 주지 자리에 너무 연연한다는 비판이 있었는데요.

"맞아요. 집착했어요. 한국 불교를 바꿔보고 싶다는 열망이 너무 강했죠. 그런데 정치권력하고 종단권력이 합세해 방해하니까 화가 많이 났어요. 그래서 폭언도 많이 했어요. 인정해요. 다들 제가 분쟁을 조장했다는데 사실 일요법회 때 법문하면서 사실을 얘기한 것밖에 없어요. 제가 물리력을 동원해 싸운 것도 아니고요. 오히려 신도들이 집단행동을 한다기에 그렇게 하면 그 길로 걸망 지고 산으로 갈 거라며 막았죠. 결국 안 되겠다 싶어 주지를 그만두는 걸로 끝을 맺었고요. 제가 잔망스럽게 자승 총무원장과 MB를 비난했다면 사람들이 저를 미친 놈이라고 욕했겠죠. 정말 미친 놈이라면 여러분이 여기까지 인터뷰하러 왔겠어요?(웃음)"

-말이 나왔으니 정치 얘기를 해보죠. 단도직입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왜 그리 싫습니까?

"역대 최악의 대통령이거든요.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잘못했으면 정직하게 사과하고 바로잡아야 하는데 아주 뻔뻔스러워요. 경제가 어려우니 국민들이 경제 살리라고 MB를 대통령으로 선택했잖아요. 하지만 저는 처음부터 최소한 박근혜 전 대표가 한나라당 후보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좌우를 떠나서 진정성 있는 사람을 좋아해요. MB는 죄를 많이 저질렀어요. 사람이 살다 보면 죄를 지을 수도 있지만, 자기 죄 감추려고 범인을 숨기는 건 아주 나쁘죠. 그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리더가 되는 건 국격 차원에서도 막아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국민이 너무 경제, 경제 하면서 잘못된 선택을 한 거죠. 그 때부터 저는 심각한 도덕적 해이가 문제가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2008년 대통령 당선자였던 MB가 蔥?사자성어로 '시화연풍'(時和年豊ㆍ나라가 태평하고 해마다 풍년이 든다)을 내놓자, 한 언론사 기자가 저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더군요. 그 때 '허언필망'(虛言必亡ㆍ거짓말하면 반드시 망한다)이라고 했죠. 대통령은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조정하고 통합해야 하는데, 종교 갈등에다 빈부 갈등, 지역 갈등까지 부추겨요."

-최근 불거진 대통령 내곡동 사저에 대해서도 하실 말씀이 있겠죠?

"한마디로 가족까지 동원한 부동산 투기죠. MB가 지난 6월 주례 라디오 연설에서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뼈를 깎는 심정으로 단호하게 부정과 비리를 척결해야 합니다. 나 자신도 오늘의 일을 보면서 분노를 금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죠. 정말 기가 막히죠. 진짜 분노를 금할 수 없는 건 국민인데요."

-일각에서는 스님답지 않게 너무 과격하다는 말이 있는데요.

"한 일간지 주필이 제게 스님이면 말 좀 점잖게 하라고 하더군요. 대통령 보고 '쥐구멍에 물들어갔으면 좋겠다', '쥐 귀에 경읽기'가 뭐냐고. 남 염장 지르는 말 좀 하지 말라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이 든 사람보다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려다 보니 의도적으로 과격하게 말하는 면도 있어요."

-이쯤 되면 대통령 쪽에서도 반응이 있었을 텐데요.

"그게 참…. (뜸을 들이다) 간접적으로 들은 얘기인데, '참 용서가 안 된다'고 했다더군요. 허 참, 그건 내가 할 소린데."

-이번 서울시장 선거 결과는 어떻게 보시는지.

"20, 30대와 40대가 박원순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걸 보면서 우리 사회는 아주 희망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번 선거는 MB정권에 대한 심판의 의미가 크죠. 이제 곧 총선과 대선 정국으로 접어들 텐데, 이대로는 한나라당이 집권하기 힘들지 않겠어요? 박근혜 전 대표가 나와도 어려울 겁니다. 안철수와 문재인, 박원순이 합치면 그 파괴력은 엄청날 거예요. 한나라당이 MB를 탄핵하는 사태가 올지도 몰라요. MB는 퇴임하면 아마 내곡동이 아니라 '통곡동'으로 가야 할 걸요."

-박원순 새 서울시장과 인연이 깊다고 들었습니다.

"10년 전쯤, 참여연대 시작할 때부터 알고 지냈죠. 제가 봉은사 주지로 있으면서 봉은사미래발전위원회를 만들었는데, 박 시장이 위원장을 맡았어요. 얼마 전 박 시장이 백두대간을 종주하던 중 대관령을 지나가면서 전화를 걸어와 '스님, 서울시장 출마하기로 했습니다. 전에 스님이 저보고 정치하라고 하셨죠? 이제 할 테니까 스님이 돈도 주시고 그러셔야 합니다'라고 농담 섞인 말을 하더군요. 박 시장은 말을 조리 있게 잘하고 남을 설득하는 재주가 있는데, 이런 장점을 살려 각계 각층을 통합하고 한국 사회의 갈등을 조절해 나가리라 믿습니다."

-문득 서울시장 선거운동 당시 한 언론에서 박 시장에게 던졌던 질문이 생각나는데, 스님께도 여쭙겠습니다. 천안함 사건은 누가 일으켰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부 발표 등에 따르면 북한이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요. 하지만 확실하게 북한 소행이라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도 많아 쉽게 결론 내기 어려운 문제라고 봐요. 어쨌든 정권이 바뀌면 천안함 사건을 전면 재조사하게 되겠죠."

-대선이 1년여 앞으로 다가왔는데 차기 대통령으로 어떤 분이 좋을까요?

"무엇보다 도덕성을 봐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잘 살아보세'를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어떻게 잘 살지는 생각해 보지 않고요. MB가 대통령 될 때쯤 유행어가 '부자되세요'였어요. 참 더러운 구호죠. 그 말에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부자만 되면 된다는 속내가 담겨 있어요. MB시대를 거치면서 우리 국민들이 애통해 해야 할 것은 무너진 도덕성입니다. 앞으로는 공정사회를 말하면서 뒤로는…. 문제는 인사에서도 드러나요. 내 편이 아니라도 능력이 있으면 일을 맡기는 게 국가 리더가 할 일인데, MB는 능력과 전혀 상관없이, 자기에게 충성을 바치는 사람이면 무조건 오케이에요. '명박산성'을 쌓은 어청수 전 경찰청장을 다시 청와대 경호처장으로 앉히는 것 보세요."

-스님이 너무 정치에 나선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지 않아요. 김홍도, 조용기 목사 같은 사람들이 정치적이죠. '누구를 찍어야 한다', '기독교 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잖아요.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은 MB 대선 캠프에서 상임고문까지 맡았고요. 그런 게 정말 정치적이죠. 저는 정치로 이익을 본 거 전혀 없잖아요. 노무현 정권 때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장관급)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왔는데 거절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안 하길 참 잘했다 싶어요."

-최근 결성된 기독교 정당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주시죠.

"종교가 정치권력과 밀접하게 결합해 타락하고 부패하면서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고려왕조 때에도 불교가 권력과 야합하면서 망했죠. MB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일부 淪奐냠?목사들은 자신들이 한국 사회의 주류인양 행세합니다. 종교가 권력과 너무 가까워지면 타락하게 돼 있어요. 강남 대형 교회 김모 목사가 기독교TV에서 설교한 내용을 요약해 보니 '무슨 짓을 하더라도 하나님께 회개하고 십일조 잘 내면 천국에 이를 것'이더군요. 미친 X이죠. 불교에서는 '내가 지은 선업(先業)은 그림자같이 따라다니고, 내가 지은 악업(惡業)은 메아리같이 따라온다'고 하잖아요. 자신이 저지른 일은 어떻게 해도 없앨 수 없어요. 나쁜 짓 해서 돈 벌어도 회개하면서 교회에 바치면 죄가 없어진다고요?"

-그럼 한국 불교계는 그렇지 않다는 말씀인가요?

"불교계도 이미 개혁 시기를 놓쳤고, MB의 하수인이 됐어요. 자승 총무원장은 MB랑 똑같아요. 무식한 것도, 자기 계파 사람들만 앉히는 것도. 같이 망하겠죠. 사실 이런 자리에서는 후덕한 미소를 담고 덕담만 해야 하는데…."

-자승 총무원장과 한때 '아주' 친했다는 말이 있던데요.

"자승 총무원장과는 아주 멀지도,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은 사이예요. 예전에 함께 룸살롱에 갔던 게 사실이냐고 묻고 싶은 모양인데, 사실입니다. 가지 않아야 할 곳에 가기는 했지만 중으로서 계율은 지켰습니다. 물론 비난을 받아 마땅한 일이었죠. 그 사건에 책임을 지고 당시 맡고 있던 조계종 종회(조계종 최고 의결 기관) 부의장을 그만두었고, 지금도 종회 의원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스님' 하면 떠오르는 금욕적이고 절제된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시는데요.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중시하죠. 깨달음이란 길들여져 있던 습관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구할 게 없는 것, 완전히 힘이 빠져 자유로운 상태라고 할 수 있죠. 해탈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육조 스님은 자신을 잡으러 온 혜명 존자에게 '불사선(不思善) 불사악(不思惡)' 즉,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죠. 참 묘한 말이에요. 착한 일도 생각하지 말라니, 이해가 돼요? 그것은 선 역시 또 하나의 업이기 때문이죠. 선업에 묶이는 것은 명주실로 부드럽게 잘 짠 밧줄로 나를 묶어놓은 것과 같고, 악업에 묶이는 것은 가시가 촘촘히 박힌 철조망으로 나를 묶어 놓은 것과 같아요. 운산만리(雲山萬里) 고월독조(孤月獨照), 구름이 흩어지면 달이 드러난다고 했듯이 모든 시비분별을 다 벗어 던지면 진리를 볼 수 있어요. 그것이 바로 해탈, 즉 불교의 궁극적 목적이에요."

-너무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다 보니 좌충우돌 하시는 거 아닌가요?

"제가 여섯 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버렸고, 해군에서 복무하던 하나뿐인 남동생도 예인정이 침몰하면서 사망했어요. 두 사람은 나를 수행자로 만들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가 간 불보살(佛菩薩)들임에 틀림없어요. 어렸을 적부터 항상 죽음에 대해 생각했죠. 그래서 자살 시도도 두 번이나 했고요. 초등학교 5학년 때에는 한강에 뛰어들었고 중2 때에는 약을 먹었어요. 그래서인지 뭘 하든 격렬하게 해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가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했는데, 도인이 아니면 그런 소리 못하죠."

-앞으로도 계속 정치권에 쓴 소리 해주실 건가요?

"봉은사를 떠나면서 조용히 살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봉은사 신도들의 제안으로 재가자(在家者)를 가르치고 수행하는 '단지불회'라는 모임을 만들었어요. 한국 불교를 새롭게 만들기 위한 열망을 담아내는 의미 있는 일이지만 저는 다 접고 월악산 보광암에 들어가 혼자 지내는 게 더 좋아요. 제가 뭐라고 대한민국을 통째로 걱정하면서 살아야 하나요.(웃음) 내년부터는 좀 더 수행자다운 모습으로 여러분을 뵙겠습니다.(합장)"

권대익기자 dkwon@hk.co.kr

김범수기자 bskim@hk.co.kr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강기정 인턴기자(경희대 국문 4학년)

■ 명진 스님, 해인사·봉암사 등 선방서 20여년

명진 스님은 1950년 충남 당진에서 출생했다. 고교 졸업 후 19세 때 해인사 성철스님 밑에서 1년 간 수행하고, 군 복무를 마친 1974년 법주사에서 탄성 스님을 은사로 계를 받았다. 75년 순천 송광사에서 첫 안거(安居)를 시작으로 해인사ㆍ봉암사ㆍ용화사ㆍ상원사 등의 선방(禪房)에서 20여년을 보냈다.

84년 해인사에 머물 때 지명수배된 운동권 청년이 가져온 광주항쟁 비디오를 보고 충격을 받아 현실에 눈뜨기 시작했다. 85년 봉은사에서 열린 '10ㆍ27 법난 규탄대회' 때 투옥되면서 '운동권 스님'이라는 별칭이 붙게 됐다. 87년 민주화운동 때에는 불교탄압대책위원장을 맡았다. 94년 조계종 종단 개혁 때에는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승복을 불사르겠다"며 사자후를 토해 개혁 분위기에 불을 당겼다. 2000년부터는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상임집행위원장과 본부장 등을 맡아 대북 교류를 주도했다.

2006년 11월에는 신도 20만명을 웃도는 서울 강남 봉은사 주지로 부임해 절의 재정을 공개하고 천일 동안 천일기도를 드리는 등 불교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하지만 지난해 3월 조계종 총무원이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전환하고 그의 주지직을 박탈하려 하자 이에 강력히 반발했다. 급기야 명진 스님은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총무원 결정에 압력을 가했다는 외압설까지 제기했다. 일파만파 번지던 봉은사 사태는 같은 해 11월 그가 주지를 그만두고 경북 문경의 봉암사로 떠나면서 일단락됐다. 올 봄에는 자서전 격인 (이솔출판 발행)를 펴내 교보문고 등 대형서점 종교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요즘은 충북 제천의 월악산 보광암에서 용맹정진하면서도 자신의 블로그 '단지불회'를 통해 정치권을 향해 거침없이 '할'을 하고 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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