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민주당 도청 의혹' 수사가 4개월 여 만에 무혐의 종결됐다. 정황으로 보아 도청이 자행됐을 개연성이 대단히 높았고, 용의자까지 지목했는데도 실체적 진실을 뒷받침할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무혐의 종결하게 됐다니 사건에 쏠린 국민적 관심에 비추지 않더라도 초라한 수사 결과다. 경찰의 수사 능력에 대한 의문이 새삼 커지지 않을 수 없다.
수사를 맡은 서울 영등포경찰서가 밝혔듯,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이 전한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발언 내용은 녹음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정도로 생생하고 세세했다. 민주당이 회의 당시 사용한 녹음기와 컴퓨터, 민주당 관계자들의 통화 내역 등을 조사한 결과 민주당 내부 유출 가능성이 배제된 순간 남은 것은 고의든 우연이든 도청뿐이었다.
그런데 진상의 열쇠를 쥔 한 의원은 소환조사를 일절 거부했고, 서면조사에서도 "처음 보는 사람한테서 문건을 받았을 뿐"이라고 버텼다. 또 일찌감치 용의자로 지목된 KBS 장모 기자는 3회의 소환조사에서 혐의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공교롭게도 경찰의 압수수색에 앞서 노트북 컴퓨터와 휴대폰도 잃어버렸다. 두 사람의 말은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렵지만, 아쉽게도 경찰은 달리 진실을 밝힐 수단ㆍ방법이 없었다. KBS와 장모 기자에 대한 압수수색이 늦어지는 순간 증거 확보의 유력한 기회가 사라졌다. 또 잃어버렸다는 컴퓨터와 휴대폰을 찾는 데 실패함으로써 일말의 기대도 물거품이 됐다.
이런 결과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 사건 본질과 무관한 '언론자유 침해' 논란이 인 데다 현역 의원으로부터 결정적 단서를 끌어내야 했으니 경찰의 발걸음이 결코 가벼울 수 없었다. 바로 이 점이 수사 결과를 보는 우려의 핵심이다. '간단한 꾀'만으로도 얼마든지 수사를 피할 수 있는 계층이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렸기 때문이다.
수사 종결로 법적 추궁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지 몰라도, 정치윤리나 언론윤리 측면에서 국민 다수의 따가운 눈길은 결코 피해갈 수 없음을 분명히 일깨우고 싶다. 정치인과 언론인이라면, 그런 눈길이 법적 추궁보다 무서울 때도 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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