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라도 음악을 사용했다가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이다." '방가? 방가!'를 만든 육상효 감독은 차기작 '구국의 강철대오'의 촬영을 앞두고 요즘 생각지도 못한 고민에 빠졌다. 최근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음저협)가 영화계를 상대로 음악이 포함된 영화 상영에 따른 사용료 징수를 별도로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1985년 서울 미 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을 소재로 삼은 코미디 '구국의 강철대오'는 당대의 가요가 이야기와 정서 전달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육 감독은 "제작사나 투자사가 음악 사용에 대해 부담스러워 한다. 감독에겐 큰 압박이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충무로에 때아닌 음악 비상이 걸렸다. 음저협이 영화상영에 따른 음악 사용료 지급을 적극 요구하면서 영화인들이 혼란에 빠졌다. 음저협의 요구를 거부하자니 당장 음악 사용이 어려워질 수 있고, 사용료를 원하는 대로 주자니 재정 부담이 만만치 않은 곤란한 상황이다. 영화계 일각에선 영화관람료 인상이 불 보듯 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음저협은 영화계에 극장 상영에 따른 영화음악 사용료로 극장 매출의 1%를 요구하고 있다. 극장 로비에서 음악이 들어간 예고편 등을 추가로 상영할 경우엔 매출의 1.5%를 내라고 하고 있다. 음저협은 기존 가요뿐 아니라 특정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곡과 효과음도 다 저작권 보호 대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극장 매출은 1조1,501억원이다. 음저협의 요구(1%)가 그대로 관철된다면 연 115억원 가량의 돈이 음저협에 지급된다. 115억원은 '해운대' 등 한국형 블록버스터 1편 제작비에 해당하며, 중급영화 3편을 만들 수 있는 돈이다. 영화계는 그 동안 영화 제작에 따른 영화음악 사용료를 지불해왔다.
음저협과 영화계는 사용료 액수를 놓고 최근 협상 테이블에 앉았으나 아직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사용료의 소급 적용 여부가 최대 걸림돌이다. 음저협은 사용료 징수를 처음 요구한 지난해 10월부터 올해까지의 사용료 지급을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영화계는 협상이 완료된 이후 시점부터 사용료 지급을 적용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음저협은 소급 적용이 이뤄지지 않으면 법정 싸움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음악 사용에 대한 추가 비용 부담 요인이 생기면서 충무로에선 기존 음악 회피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1일까지 175만3,047명이 찾은 '완득이'는 당초 송창식이 부른 '밀양아리랑' 등으로 뒷부분을 장식하려 했으나 창작곡으로 대체했다. '완득이'의 김재중 프로듀서는 "꼭 쓰고 싶은 노래가 아닌 이상 굳이 위험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충무로의 음저협에 대한 반감도 점점 커지고 있다. 한 영화제작자는 "음저협이란 단체 이익만을 위한 조치다. 영화 창작활동 위축을 불러올 것"이라고 성토했다. 또 다른 영화제작자는 "당장 1년에 100억원 넘는 손실을 보게 생겼으니 영화관람료 인상 주장이 뒤따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영화를 제작할 때 음악저작권료를 지불해 왔는데 극장 상영에 따른 사용료까지 내면 '이중과세' 아니냐는 불만도 충무로에선 터져 나온다. 하지만 음저협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최대준 음저협 방송팀장은 "사용료 1%는 조정될 수 있으나 징수를 포기할 수 없다. 우리는 원칙대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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