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가능성있는 배우'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2007년 '미스터 로비'로 연극 무대에, 2008년 '사춘기'의 주인공 영민으로 뮤지컬 무대에 데뷔한 박해수(30)는 이후 코미디('39계단'), 멜로('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폴 포 러브') 등 다양한 장르의 연극과 뮤지컬('영웅')에서 주조역으로 꾸준히 활약해 왔다.
올해는 공연계를 떠들썩하게 한 창작극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인 연극 '더 코러스-오이디푸스'(연출 서재형)와 지난 여름의 흥행작 '됴화만발'(연출 조광화)의 주인공으로 극을 이끌었다. 데뷔 4년 만에 공연 기획자들이 또래 중 가장 탐내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박해수는 25일부터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갈매기'의 주인공 트레플레프 역을 맡아 무대에 오른다. 트레플레프의 엄마 아르카지나를 연기하는 배우이자 제작자인 우현주 극단 맨씨어터 대표가 평소 눈여겨봤던 그를 콕 찍어 캐스팅했다.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홉의 대표작 '갈매기'는 극작가가 되고 싶은 트레플레프와 배우 지망생 니나, 은퇴한 여배우 아르카지나, 위선적인 작가 트리고린 등의 얽히고설킨 사랑, 꿈과 좌절을 통해 우울한 시대 고통을 파헤친 작품. 이전부터 꼭 맡고 싶었던 '꿈의 배역'을 오디션도 거치지 않고 차지하는 행운을 잡았건만 뜻밖에 그는 자괴감에 빠져 있다고 했다.
"선 굵은 작품 몇 편을 거치면서 나름 연기에 자신감을 가졌는데 요즘 연습하면서 많이 깨지고 있어요. 대학교 때부터 섬세한 연기에 서툴러 스트레스를 받곤 했는데 이번에 다 들통나게 생겼네요."
어린 시절부터 배우를 꿈꾼 그는 고교 연극반에서 기초를 다지고 단국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해 본격적인 연기공부를 했다. 연기 외의 관심사를 묻는 질문에 "고래를 타 보고 싶다"는 밑도 끝도 없는 대답을 할 만큼 천진난만한 성격이지만 무대에만 서면 표정도 몸도 굳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했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자칭 '노안(老顔)' 덕분에 선 굵은 역할을 주로 맡으면서 연기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한다.
"'더 코러스-오이디푸스'나 '됴화만발'에서는 공연 내내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는 역할인지라 과하게 쏟는 에너지만으로 저를 좋게 봐 주신 관객들이 많았거든요. 이번에는 무대를 오르내리며 세월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보여줘야 하는 역할이라 많이 달라요. 대학교 때 '갈매기' 워크숍 공연에 몇 번 참여했지만 대부분 나이 많은 트리고린 역할이었죠, 노안이라."
"밤잠을 못 이룰 만큼 스트레스가 많다"며 엄살을 떨지만, 그의 연기력은 영화, TV드라마 관계자들에게까지 입소문이 퍼졌다. '됴화만발' 이후 몇 차례 영화 오디션에 참여했고 조만간 TV드라마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배우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많은 작품에 출연해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돈이나 인기를 우선순위에 두고 작품을 선택하지는 않을 거예요. 물론 뿌리는 연극에 둘 겁니다."
그는 "전신이 관객에게 그대로 노출되는 날 것의 연극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워 직업으로서 배우의 길을 고민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고통이 클수록 관객의 기쁨이 커지는 무대 연기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성장이 기대되는 이 유망주가 바라는 이상적인 배우란 어떤 모습일까. "좋은 동료가 되고 싶어요. 객석을 등지고 있을 때도 계속 감정을 유지하며 상대 배우의 연기를 돕는 배려심 깊은 배우요. 그렇게 된다면 관객에게 일부러 잘 보이려 하지 않아도 제 마음이 전달될 거라 생각해요."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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