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게임'으로 치닫던 반도체 시장에서 드디어 승자와 패자가 갈리기 시작했다. 1년여에 걸친 출혈경쟁에서 대만과 일본 업체들은 서서히 백기를 드는 분위기이고, 결국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가 승자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1일 일본 현지언론에 따르면 세계 3위 D램 반도체 생산업체인 일본 엘피다는 3분기 들어 40나노급 D램 생산량을 20%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엘피다는 일본과 대만 공장에서 모두 매달 25만장 정도의 웨이퍼(반도체 원판)를 생산했는데, 3분기 이후 5만장을 줄인 상태다. 엘피다는 4분기에도 1만장 이상 추가 감산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만 업체들은 이미 감산에 착수한 상태다. 난야(세계 5위)는 9월부터 D램 생산량을 10% 줄였고, 파워칩(세계 6위)도 4분기부터 월간 생산량을 50%까지 축소했다.
일본과 대만의 메모리반도체 업체들이 감산을 시작했다는 것은 더 이상 물량경쟁을 감내할 만한 힘이 없다는 뜻.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반도체 시장은 서로 마주 보고 달리다가 겁 먹는 쪽이 피하는 오토바이 경주, 즉 전형적인 치킨게임이었다"면서 "일본과 대만업체들이 생산물량을 줄였다는 건 더 이상 싸움을 끌고 갈 의지가 없다는 의미다"고 말했다.
그 동안 반도체 업체들은 세계적 수요감소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생산을 줄이지 않았고, 이로 인해 D램 가격은 이미 원가 이하로 떨어진 상태다. 시장조사업체인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주력 제품인 1기가비트(Gb) DDR3 D램의 지난달 말 가격은 원가에도 못 미치는 0.50 달러로 사상 최저치까지 추락했다. 그런데도 생산업체들은 한 두 곳이 먼저 쓰러지기만을 기다리며, 적자생산을 계속해왔다.
그 결과 엘피다와 대만업체들은 이미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태. 엘피다의 2분기(7~9월) 매출은 전분기 대비 33% 줄어든 642억8,000만엔에, 영업적자는 451억8,000만엔까지 늘어났다. 대만 업체들도 이미 지난해 말 D램 가격이 1달러 밑으로 떨어진 이후부터 순손실 상태로 접어들었다.
일본 대만 뿐 아니라, 미국의 마이크론(세계 4위) 역시 D램 생산 비중을 줄이면서 서서히 전략제품을 낸드플래시로 이동시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결과적으로 세계 1위인 삼성전자와 2위인 하이닉스를 제외한 주요 D램 업체들 모두가 감산에 들어간 셈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시장지배력과 수익성은 더욱 개선될 전망이며, 3분기 큰 폭의 적자를 냈던 하이닉스도 반등의 모멘텀을 찾게 됐다.
물론 치킨게임이 끝나간다고 해서 반도체 시장이 곧바로 회복되는 건 아니다. 세계경기침체로 PC수요가 여전히 부진한 터라, 반도체가격이 단기간 내 회복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강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해외업체들의 감산으로 D램 가격은 이제 바닥을 쳤다고 봐야 한다"며 "최대 수요처인 유럽과 미국 등에서 PC수요가 언제 살아나느냐가 반도체 경기의 반등시기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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