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재보선 이후 여권 내부에서 세력 재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장 보선 패배에 따른 위기 수습책을 놓고 두 갈래로 나뉘고 있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와 임태희 대통령실장,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등은 현재의 여권 지도부 체제를 유지한 상태에서 정책을 쇄신하고 공천 개혁을 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 이재오 의원, 원희룡 최고위원 등은 "현재의 체제로는 내년 총선을 치를 수 없다"면서 지도부 전면 개편 등 인적 쇄신을 촉구하고 있다.
정 전 대표는 당헌 수정을 통한 박 전 대표의 조기 등판론을 제기했다. 그는 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공천 개혁 등을 추진하려면 책임질 수 있는 지도부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선주자급 인사들을 중심으로 지도부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친이계 좌장 역할을 했던 이재오 의원은 "지력이 다한 땅에 아무리 땀을 흘려 농사를 지은들 쭉정이 밖에 더 있겠는가"라며 '객토(客土)론'을 역설했다. 지도부 개편과 정계 재편 등을 촉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원 최고위원은 "지도부부터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면서 연일 '지도부 총사퇴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 같은 주장에 일부 친이계 의원들이 가세하고 있다.
반면 홍 대표는 당명 교체를 포함한 파격적인 당 개혁안을 약속하면서도 어디까지나 '현재의 지도부 체제'가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을 펴고 있다. 임 실장도 "마음을 비우고 일하고 있다"면서도 "한미 FTA 비준동의안 처리 등 할 일이 많은 만큼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라고 말했다. 친박계도 홍 대표 체제의 바람막이 역할을 하고 있다. 친박계 최경환 의원은 "지도부를 바꾼다고 당이 쇄신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홍사덕 의원도 정 전 대표의 '박근혜 전면 등판론'을 겨냥해 "(정 전 대표) 참모 중에 미국에서 정치 공학을 헛공부하고 온 사람이 있지 않나 싶다"고 비판했다. 박 전 대표 본인도 "이전에도 선거 결과에 따라 비상대책위도 구성하고 그러지 않았느냐, 그게 제대로 된 반성으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두 갈래 주장의 배경엔 이들 사이의 정치 공학도 작용하고 있다. 체제 개편론자들은 판이 크게 흔들릴수록 자신들의 활동 공간이 넓어질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반면 친박계는 박 전 대표가 권력 투쟁의 한복판에 서서 내년 총선을 지휘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일단 체제 유지론에 더 힘이 실리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비준동의안과 예산안이 처리된 뒤에는 총선 대비 차원에서 체제 개편을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12월에 당 지도부와 청와대 참모진 개편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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