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뤄진 MB 정권의 금융 공기업 인사를 놓고 말들이 많다. 최고경영자(CEO)와 감사 등이 잇따라 바뀌고 있는데, 집권 초기의 '고소영' '강부자' 인사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자기 사람 챙기기'가 노골적인 탓이다. 정가와 관가에선 정권 말기에 들어선 현 정부의 금융 공기업 인사 특징을 두 가지로 요약한다. 하나는 '스텔스 낙하산'이다. 소리 소문 없이, 아무도 모르게 임명 절차를 끝내버리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의 人事
대표적인 사례가 예금보험공사의 감사 선임이다. 지난달 6일 이명박 대선 후보의 선거 외곽조직에서 활동하다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던 금융 문외한이 예보 감사에 취임했다. 그는 3개월 앞서 기업은행 감사에 내정됐다가 낙하산 논란이 일자 중도 하차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그의 취임은 외부에서 전혀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히 진행됐다. 공모와 심의, 임명 제청, 대통령 임명 등의 절차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또 하나의 인사 특징은 '올드보이의 귀환'이다. 공직을 떠난 지 10년도 넘은 관료 출신들이 이례적으로 한국조폐공사 사장, 기술보증기금 이사장, 정책금융공사 사장 등 핵심 기관장 자리를 꿰찬 것이다. 낙하산을 호시탐탐 노리는 후배 경제관료들조차 혀를 끌끌 찰 정도였다. 정확한 발탁 배경은 알 수 없으나, 몇 가지 인연이 인사 배경으로 거론된다. 이명박 후보 상임 특별보좌역을 지냈거나, 현 정권의 '인사과장'으로 불리는 강만수 산은금융 회장, 임태희 대통령실장 등과 각별한 친분이 있던 인사들이라는 점이다.
그나마 전문성이 요구되는 금융 공기업이 이 지경이니, 일반 공기업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미 낙하산 천국이 된 지 오래다. 한국전력을 예로 들어보자. 지난달 취임한 사장은 대통령과 같은 지역 출신에다 같은 대학, 같은 회사를 다녔던 인물이다. 한전 상임이사 7명 중 5명이 대통령과 동향이거나 한나라당 출신이다. 최근 한전 자회사인 한전KDN 사장에는 이명박 후보 선거캠프에 참여했던 인물이 임명됐다. 그의 선임 과정 역시 군사작전을 감행하듯 비밀리에 진행됐다. 전임 사장도 이명박 후보 상임특보를 지낸 인사였다. 한전과 11개 자회사의 감사 12명은 한나라당, 대통령직인수위, 청와대, 현대 출신 일색이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을 자임하는 MB 정부에서 지금 벌어지는 인사 행태들이다. 어느 정권이나 말기에 접어들면 낙하산 인사가 극성을 부리기 마련이지만, MB 정권의 낙하산 인사는 너무 노골적이다. 그야말로 눈치코치도 없고, 염치마저 모두 벗어 던졌다. 이러니 공기업이 제대로 굴러갈 리 없다. 이명박 정부 들어 27개 대형 공기업의 금융빚은 74%나 치솟았다. 그런데도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등 잇속 차리는 데 혈안이다. 전문성이 없는 정치권 인사들을 CEO와 감사 등 핵심 요직에 낙하산으로 내려 보낸 탓이다.
선거캠프 출신을 정무직 참모에 앉힌다고 해서 뭐라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기업 인사는 다르다. 제대로 된 사람을 뽑아야 공기업 경영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높일 수 있다. 전문성과 능력을 무시한 낙하산 인사의 폐해는 결국 국민들의 혈세로 메울 수밖에 없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당선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선거를 도와줬기 때문에 함께 시정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서울시에 들어간다고 해도 전문성이나 역량이 검증돼야 한다." 옳은 얘기다. 이 말이 헛된 구호로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현재 서울시에는 서울메트로 등 5개 투자기관과 서울신용보증재단 등 11개 출연기관이 있다).
MB 실패를 타산지석 삼아야
이명박 정부도 출범과 동시에 '공기업 선진화'를 부르짖었다. 그 요체는 인사 혁신이었다. 선거 때 도와줬던 인물이나 정치권의 낙천ㆍ낙선 인사를 배제하고 전문성과 능력 위주로 인사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그 말은 작심삼일에 그쳤다.
조만간 여야 대선 후보의 윤곽이 드러나고, 각종 대선 공약이 난무할 것이다. 후보들이 이런 공약을 내걸었으면 좋겠다. "대선 캠프에는 철저히 자원봉사자만 모아 쓰겠다. 나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고 공기업 사장이나 감사 등의 감투를 주지는 않겠다." MB 정부가 만신창이가 된 책임의 상당 부분이 잘못된 인사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고재학 경제부장 goindo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