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남자로 태어나 꼭 한번 해볼 만 한 직업으로 오케스트라 지휘자, 해군 제독과 함께 야구 감독을 꼽는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앞세워 일사불란하게 조직원들을 통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려 33년 동안 자신만의 야구 세계를 구축했던 ‘전설’이 정상에서 조용히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메이저리그의 ‘야신’ 토니 라루사(67)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감독이 전격 은퇴했다.
라루사의 은퇴 선언은 텍사스 레인저스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거둔 지 사흘 만에 나왔다. 라루사는 1일(한국시간) 세인트루이스 부시스타디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이 바로 떠날 때다”고 말했다. 우승 감독이 곧바로 사퇴한 것은 월드시리즈가 거행된 지난 1903년 이후 처음 있는 ‘역사적 사건’이다. 미국 언론들은 라루사의 갑작스러운 사퇴에 놀라운 반응을 보이면서도 그의 결단에 박수를 보냈다.
세인트루이스는 지난 8월까지만해도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 선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10.5경기나 뒤져 있었다. 포스트시즌 진출이 사실상 힘겨워 보였다. 라루사는 이미 8월말 존 모제리악 단장을 비롯한 구단 관계자들에게 은퇴 의사를 전달했다.
세인트루이스는 그러나 9월 이후 12승2패의 무서운 뒷심을 발휘하면서 결국 시즌 최종전에서 기적적으로 와일드카드를 거머쥐었다. 가을잔치에서는 빅리그 최고 승률팀 필라델피아와 리그 중부지구 우승팀 밀워키를 연거푸 꺾고 월드시리즈에 올랐다. 그래도 ‘떠날 때가 됐다’는 그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34세의 젊은 나이로 1979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감독 생활을 시작한 라루사는 올해 세인트루이스를 이끌고 생애 통산 세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통산 2,728승 2,365패(승률 0.536)를 거둔 라루사는 역대 메이저리그 감독 중 코니 맥(3,731승), 존 맥그로(2,763승)에 이어 최다승 3위를 기록하며 유니폼을 벗었다. 라루사는 통산 승수 가운데 절반이 넘는 1,408승을 16년간 세인트루이스에서 올렸다.
라루사는 “지금 은퇴하는 게 올바른 결정이라 생각한다. 기분이 좋다”고 했다. 한 시즌만 더 뛰면 존 맥그로를 추월해 감독 최다승 2위에 오를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런 기록 때문에 복귀한다면 스스로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다시 감독직을 맡을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단호하게 “없다”고 말한 그는 단장도 할 생각이 없지만 앞으로 야구와 관련된 다른 일은 할 수 있다며 여운을 남겼다. 라루사는 환하게 웃으며 “서점을 열 수도 있다”고도 했다.
김종석기자 left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