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데에는 돈을 줬다는 한만호 전 한신건영 사장의 진술 번복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유일한 직접 증거인 한씨 진술이 바뀜으로써 진술의 신뢰성이 깨졌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지난해 4월 한 전 총리가 곽영욱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 달러를 받았다는 혐의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던 것과 같은 이유다. 금품 공여자의 진술에 의존했던 검찰 수사가 연속 된서리를 맞게 된 것이다.
한 전 사장은 지난해 12월 법정에서 "한 전 총리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 사실이 없다"고 검찰 진술을 뒤집었다. 그러나 검찰은 "한씨가 진술을 번복했다 하더라도 검찰에서의 진술이 사실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며 승리를 자신했다. 한씨가 특별사면 무산에 따른 실망감과 사업 재개 등 개인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법정에서 거짓 진술을 했다고 검찰은 주장했다.
검찰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한씨가 수감 중인 교도소를 압수수색해 진술번복을 사전에 모의했다는 정황이 적힌 편지와 한씨의 교도소 면회 대화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확보해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한씨의 법정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 동시에 "추가 기소에 대한 두려움에다 반복된 소환 조사와 당시 검찰의 분위기 등을 고려할 때 (검찰 진술도) 신빙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유일한 직접 증거인 한씨의 법정 진술은 물론, 검찰 진술의 증거 능력도 부인한 것이다.
재판부는 검찰이 보강 증거로 제시한 ▦한 전 사장이 9억원을 조성하고 환전한 내역 ▦한 전 총리의 비서 김문숙(51)씨로부터 2억원을 돌려받은 것 ▦한 전 총리 측에 3억원 반환을 요구한 것 등은 사실로 인정했다. 하지만 "(그것이) 직접적으로 한 전 총리가 돈을 받았다는 증거는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2억원을 돌려받았다는 사실은 (운전기사 등이) 단순히 돈을 돌려받았다는 소문을 들었다는 전문 진술에 의한 것이고, (한씨가) 3억원 반환을 요구했다 하더라도 돈 거래의 상대가 김문숙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신건영의 채권회수목록과 B장부(세부목록)에 적혀 있는 '의원','한의원' 등의 표기 역시 작성자인 경리담당부장에게 한씨가 김문숙씨에게 전달한다고 말한 것을 한 전 총리에게 주는 것으로 잘못 이해해 기재했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장인 김우진 부장은 "입증의 책임은 검찰에 있는데, 한 전 총리에게 건넸다는 돈의 행방은 알 수 없다. 한 전 총리 측이 공소사실에 대해 확실히 해명하지 않은 측면이 있지만, (검찰이) 이를 입증하는데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재판부의 논리는 지난해 '5만 달러 뇌물 수수 사건' 무죄 판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곽영욱 전 사장은 법정에서 자신이 건넨 돈의 액수는 물론 돈을 건넬 당시의 상황을 진술할 때 오락가락했다. 이에 재판부는 "곽씨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며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곽씨와 한 전 총리의 친분관계 등 정황증거로 제시된 것들에 대해서는 "살펴볼 필요도 없다"고 판단조차 하지 않았다.
이번 무죄 선고로 한 전 총리는 일단 사법부의 단죄를 피하게 됐다. 하지만 법적 공방이 끝난 것은 아니다. 검찰은 "객관적인 물증을 법원이 합리적 이유 없이 배척했다"며 항소심에서의 일전을 벌써부터 벼르고 있다.
한편, '5만 달러 뇌물 수수'건 항소심은 다음달 11일 공판준비기일을 끝으로 본격 심리에 들어갈 예정이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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