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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고요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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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고요의 지혜

입력
2011.10.3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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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미국 동부의 작은 마을에 들른 적이 있다. 아이들이 서넛 놀고 있는 한낮의 공원에 앉아 있는데 여섯, 일곱 살쯤 된 아이가 할아버지와 나타났다. 아이가 장난을 치면서 돌아다니다가 공원 한쪽에서 놀고 있던 같은 또래의 아이에게 물을 잔뜩 담은 모래를 뿌렸다. 모래와 물이 범벅이 된 아이는 젊은 아버지와 같이 와 있었다. 아이가 물에 젖은 것을 보고, 그 젊은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아이에게 소리소리 지르며 야단을 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이에게 사과를 하라고 거칠게 소리쳤다. 이쯤 해서는 옆에 있는 나도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자녀 친구에게 고소장 보내는 부모

그런데 할아버지는 조용히 앉아 자신의 손주와 젊은 아버지를 쳐다볼 뿐 이었다. 아이는 조그마한 소리로 사과를 했고, 한참을 소리지르던 젊은 아버지는 제 풀에 지쳐서 아이를 데리고 공원을 떠났다. 그때까지도 할아버지는 한 마디 말이 없었다. 잠시 후 손주가 멋쩍은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돌아다보았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아이를 향해 두 손을 활짝 펼쳤다. 아이가 할아버지가 앉아 있는 품으로 뛰어 들어왔다. 할아버지가 아이를 꼭 안아주면서 무언가 작은 소리로 아이의 귀에 속삭여주었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우리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 간에 다툼이 일어나면 부모들의 반응이 대단하다. 특히 저학년 아이들의 경우, 아이들의 사소한 다툼이 부모들끼리의 큰 싸움으로 번지기 일수이다. 중재의 노력을 하는 담임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학교 교실로 찾아가 담임에게 따지고 공격하는 일도 서슴치 않는다. 그뿐인가. 일부 철없는 부모는 "지금 다른 아이가 나를 못살게 굴고 있다"는 아이의 전화에 곧장 직장에서 달려와 교실에 뛰어들어가기도 한다. 심지어는 사소한 아이들의 다툼을 가지고 열 살 된 상대방의 아이에게 고소장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자신의 아이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내 자식을 정말 귀하게 여긴다면, 교사나 주변의 학부모들을 대할 때에 보다 성숙한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첫째, 교사의 권위를 지켜주는 것이 진정으로 내 아이를 위하는 길이다. 이를테면 아이가 듣는 곳에서 담임의 험담을 하거나, 심지어 학교에 찾아가 학생들 앞에서 교사를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담임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아이를 망치는 길이다. 자신의 부모가 교사를 함부로 대하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아이가 교사를 존경할 수 있을까? 교사의 권위가 살아야 교육이 산다. 내 아이가 받을 교육이 산다. 둘째, 아이들끼리의 다툼은 최대한 아이들끼리 해결하도록 둘 일이다. 학교는 단순이 공부를 배우는 곳이 아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다른 사람들과 사는 법을 배운다. 다른 사람을 돕고, 도움을 받고, 때로는 협력을 하고 신뢰를 쌓지만 때로는 갈등을 겪는 과정을 거쳐서 아이들은 큰다.

셋째, 학부모들이 아이의 안전이나 심각한 심리적 상처를 우려해서 부득이 개입을 하게 되는 경우엔 최대한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품위 있는 교육 생각해 볼 시점

이 가을을 맞아 우리가 너무나 소란스럽게 아이를 키우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고요의 지혜를 담아 조금 더 품위 있게 아이를 키우는 것을 생각해 보면 좋겠다. 내 아이 귀한 것만 생각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함부로 감정을 쏟아내는 것은 쉽다. 그러나 공원의 할아버지처럼 말없음을 통해서 아이를 가르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그 순간을 견디어내고, 아무 말 없이 자신을 안아주는 할아버지의 품에서 손자는 훨씬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그리고 함부로 소리를 질러대는 젊은 아빠의 경박함과 대조되는 품위도 배웠을 것이다.

김은주 연세대 교육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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