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무관심은 미래 세대에게 따라붙는 꼬리표이다. 그들은 사회적 고립을 겪으면서 언제부터인가 서로를 '잉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잉여란 말은 기존의 시스템에 참여하지 못한 채 '나머지'로 존재하는 그들의 상황을 자조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의외다. 잉여들이 사회적으로 움직인다. 젊은 세대가 스스로 조직화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유럽에서 청년들의 시위가 화제가 되더니, 최근에는 금융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뉴욕에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자'는 새로운 방식의 시위가 일어나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국내에서도 젊은 세대가 선거인단 투표와 서울시장 선거에 대거 참여해 변화의 열망을 실증한 것도 유사한 흐름일 것이다.
잉여의 움직임은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소수 엘리트의 완결적이고 폐쇄적인 시스템이 자신들에게는 빈곤과 불안을 영속화하는 것일 뿐이라고 외친다. 탐욕스럽고 독점적인 시스템이 자신들이 겪는 고통을 느낄 수 없고 절박한 목소리를 들을 능력이 없다고 단언한다. 잉여들의 등장으로 사회의 유동성은 크게 증가하고, 기존 시스템에 대한 변화 압력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젊은 세대가 더 이상 숨지 않고 세상을 만난다. 이제 그들은 불공정한 질서에 수동적으로 적응하지 않고, 상황을 창조적으로 전환시키려는 창조적 소수가 된다. 탐욕과 독점에 기초한 '그들만의 리그'를 공유와 나눔의 질서로 전환시키고자 한다. 그들은 스스로 모여 서로의 말을 들어주고, 서로의 가치를 읽어주고, 서로 의지와 의지가 만날 수 있는지 탐색하는 소통의 축제를 만들어낸다. 공동의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이야기를 시작했고, 동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소통의 축제가 시작되었다. 자신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단언하는 사람들이나 상대를 규정하려고 드는 사람들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곤란을 정말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진지하게 말을 들어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감동할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슬픔과 분노에 싸여 있지만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에게는 즐거운 마음으로 달려갈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도 젊은 세대의 분노를 미래를 위한 상상으로 전환시키는 노력에 진력해야 한다. 최근 서울청소년창의서밋에 참가한 홍콩창의성학교 초대 교장 에이다 웡의 말은 당대를 사는 우리들의 과제를 시사한다. "미래 세대를 위해서는 더 큰 관용과 공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를 위한 공동의 플랫폼을 만들어야 합니다."
전효관 서울시 하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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