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동산 시장에선 40평대 이상인 중대형 아파트가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미분양이 났다'거나, '마이너스 프리미엄(분양가 이하의 시세)이다'라는 말이 나오면 시장에선 바로 중대형을 떠올릴 정도죠. 자고 나면 값이 뛰던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중대형 아파트가 당시 상승세를 주도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 중대형 아파트가 미분양 굴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데는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시작된 국내 부동산 침체가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중대형의 굴욕은 2006년 합법화된 발코니 확장이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발코니 확장 합법화로부터 실제로 분양시장 '다운사이징'을 이끌어내는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건설사들은 분양 상품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광폭 발코니'를 비롯해 조그마한 자투리 공간이라도 활용해 서비스 공간으로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새로 나오는 20평대 아파트는 예전 30평대 평면에 뒤지지 않을 정도가 됐고, 신평면의 30~40평대 아파트는 과거 40~50평대 크기와 엇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크게 느껴질 정도가 됐습니다. 3,000만원 안팎인 발코니 확장 비용만 내면 10평은 더 넓게 살 수 있게 된 셈이니, 시세가 평당 2,000만원이라 가정하면 1억7,000만원은 덤인 셈인 것이죠. 30평 살 돈으로 40평에, 40평 살 돈으로 50평을 누릴 수 있게 됐으니 집을 넓혀 갈아타려는 수요자들이 주는 것은 당연한 이치겠지요.
건설사 입장에서는 발코니확장이 중대형의 침체로 이어졌다는 점이 달갑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소형 주택의 내부구조에 혁신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건설사에 높은 점수 줄 만합니다. 발코니 확장형 설계 덕분에 입주자들도 전용 60㎡의 소형 주택으로도 과거 전용 85㎡ 크기에서나 가능했던 실내 공간을 누릴 수 있게 됐습니다. 결과적으로 건설사들도 소형주택의 평면 특화가 침체된 분양시장에서 살아남는 비책이 되고 있습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길 수밖에 없는 세상이치가 분양시장에서도 예외는 아닌가 봅니다.
전태훤 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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