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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11월의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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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11월의 동화

입력
2011.10.31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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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이 '1'이라면, 당신이 당신을 사랑하는 일도 '1'입니다. 내가 '1'이라면 당신도 '1'이고, 당신이 '1'이라면 나도 '1'입니다. 우리는 나무 속에 '1'을 감추고 만났지만 나는 당신의 꽃만 보았습니다. 아득한 꽃향기에 취해 그것이 당신의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당신은 나의 열매만 보았습니다. 주렁주렁 달리는 열매가 나의 전부인 줄 알았을 것입니다. 빛나는 신록과 무성한 녹음, 찬란한 단풍에 눈멀었습니다. 이제 그 잎들의 시간마저 한 잎 남김 없이 다 돌려주고 빈 숲 속에 섰습니다. 열매를 모두 땅에 돌려주고 나는 빈 몸의 '1'입니다.

벌써 꽃을 바람에 주고 당신도 빈 몸의 '1'입니다. 나는 빈 나무입니다, 당신도 빈 나무입니다. 나는 당신에게서 나와 똑 같은 '1'을 봅니다. 당신도 나에게서 당신과 똑 같은 '1'을 봅니다. 내가 즐거울 때 당신이 즐거웠듯이 당신이 쓸쓸할 때 나도 쓸쓸해집니다. 내가 나를 봅니다. 당신이 당신을 봅니다.

가진 것을 다 버렸기에 나는 당신이 보이고 당신은 내가 보입니다. 내가 당신 쪽으로 한발 다가섭니다. 당신이 내 쪽으로 한발 다가옵니다. 당신의 '1'과 나의 '1'이 나란히 섰습니다. 당신에게서 내 나무 내음이 나고, 나에게서 당신 나무 내음이 납니다. 나란히 서니'우리'입니다. 우리이니까 '11월'입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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