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진짜 풀리는 것일까? 기대는 해볼 만하나 낙관하기에는 이르다. 유럽연합(EU) 정상들이 밤샘 협상 끝에 27일 내놓은 합의안의 골자는 그리스 국채에 대한 민간 채권단의 손실 분담률을 50%로 확대하고,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1조 유로로 늘리며, 유로존 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을 9%로 높인다는 것이다.
유럽의 재정위기, 고비는 넘겼지만
극적인 과정에 비해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없다는 비판도 있지만 세부 사항이야 정상회의가 아니더라도 추후에 얼마든지 조율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작년 5월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본격화한 유럽 재정위기가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번져가려는 시점에 3대 핵심 쟁점에서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이로써 벼랑 끝까지 갔던 유럽 재정위기는 해결의 가닥을 잡았다. 글로벌 금융시장을 짓눌렀던 불확실성도 어느 정도 걷히며 각국 주식시장은 오랜만에 동반 급등세를 탔다.
그러나 잘 들여다 보면 '불편한 진실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우선 그리스 국채에 대해 50%의 헤어컷(haircut)을 용인한 것은 사실상 디폴트나 다름없다. 과거 러시아(1998년)와 아르헨티나(2001년)가 디폴트 선언 후 채무협상을 통해 얻어낸 부채 탕감 비율이 각각 40~63%, 25~86%였다. 다만 이번에는 부채 탕감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무질서한 디폴트 대신 질서 있는 디폴트를 선택했을 뿐이다. 질서 있는 디폴트는 선제적으로 대규모 채무 조정을 해줌으로써 주변국으로 위험이 전이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 국채를 50% 상각 해야 하는 유로존 은행들은 1,080억 유로의 손실을 떠안게 됐다. 이같은 손실로 인해 은행 부실 우려가 커지면 불안해진 예금자들이 돈을 빼내고 소규모 은행의 도산과 금융 공황이 벌어질 수 있다. 재정위기가 은행위기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10여 년 전 IMF 위기 당시 우리가 경험했듯이 유로존 은행들의 통폐합과 국유화, 대규모 주식 감자가 불가피해질 것이다.
은행들의 자본 확충을 위해 EFSF를 1조 유로로 증액하기로 했지만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EFSF 증액을 위해서는 유로존 17개 회원국 의회가 전부 승인해야 한다. 작년 5월 2,500억 유로로 출범한 EFSF를 4,400억 유로로 늘리는 데도 합의 후 최종 확정까지 3개월이 걸렸다. 그것도 막판에 슬로바키아 의회가 일시 반대하자 전세계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지는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내년 3월 말까지 그리스 332억 유로, 스페인 840억 유로, 이탈리아 1980억 유로의 국채가 만기 도래하는데,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사태 완전 해결까진 진통 불가피
EFSF 재원 확충을 위한 자금 조달 방안도 숙제다. 여력이 있는 나라는 프랑스와 독일 정도지만, 무디스 같은 신용평가기관은 이들이 출자할 경우 신용등급을 강등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그렇다고 유럽중앙은행(ECB)의 발권력을 동원하자니 인플레이션을 우려한 독일이 극구 반대한다. 대안으로는 중국과 브라질을 비롯한 신흥국가 자금이 유력하게 거론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중국이 돈을 내놓는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할 텐데, 협상이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정부 긴축안에 반발하는 시위가 날로 격화되고 있는 그리스 국내 사정은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상황이다.
외신에 따르면 장 클로드 융커 EU 재무장관회의 의장이 정상회의장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진실의 순간에 다가서고 있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진실의 순간'이란 투우사가 마지막 일격으로 소의 급소를 찌르는 순간을 일컫는 말인데, "절대 실패가 허용되지 않는 결정적인 시점"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진실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거나 어쩌면 벌써 지나쳐버렸는지도 모른다.
박정태 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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