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7, 8월 경기 수원시(당시 수원군)에 큰 물난리가 났다. 가옥 수십 채가 침수되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특히 수원 화성의 북쪽 수문 화홍문은 물줄기 위에 건설됐기 때문에 피해가 더욱 컸다. 석축과 석문 전부가 파괴되고 문루까지 무너졌다. 이후 23년부터 33년까지 대대적인 수리 보수 공사가 이뤄졌다. 하지만 복잡한 옛 건축물을 보수하려면 이를 정확하고 세밀하게 표현한 설계 도면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려진 것이 바로 '수원화홍문 기타 복구공사설계도(1923년)'다. 단순히 오래 된 설계도라는 의미를 너머 예술작품에 가까운 그림이다.
숨겨진 예술작품, 전통 건축물의 설계도면 필사본이 세상에 나왔다. 경기 수원화성박물관은 올해 말까지 국내 최초 전통건축 도면 전시회인 '마음으로 그린 꿈, 역사로 이어지고'를 개최한다고 30일 밝혔다. 경복궁, 광화문, 일제강점기 불국사 수리도면, 수원화성(華城) 복원 도면 등, 90여 점의 전통도면이 국내 최초로 전시된다.
'수원 화홍문 기타 복구공사 설계도'는 오구(烏口)펜(만년필 같이 잉크를 넣어 사용하는 끝이 뾰족한 펜)을 사용해 전체 위치도 뿐 아니라, 정면도, 배면도, 측면도와 단면도, 측면벽 상세도까지 모두 한 장에 그렸다. 또 석축과 문루에 사용되는 돌과 나무의 재질, 기와의 무늬, 돌담에 표현될 무늬와 단청무늬까지 세밀하게 표현됐다. 물론 이 모든 작업은 사람의 손으로 이뤄졌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예술작품이나 다름없는 이 설계도를 누가 그렸는지 작도자가 표시돼있지 않다는 것. 오선화 수원화성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수원 화홍문 기타 복구공사 설계도'라고 쓴 도면 제목의 글씨까지 일품"이라며 "단순히 건축물을 짓기 위한 설계도면의 역할을 뛰어넘어 하나의 예술 작품이기에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경복궁배치도(한지, 265㎝×407㎝)는 1888~1890년 그려진 것으로 고종 때에 중건한 경복궁의 궁궐배치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여러 장의 종이를 이어 붙여 그린 형식인데 고종이 창덕궁에서 경복궁으로 이어(移御)한 직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배치도에는 상궁나인들의 처소와 각 생활공간들도 표시돼 있다.
또 '태상지' '경모궁 개건도' '화성 전도' '장용영 본영 도형' 등 한지에 가느다란 붓으로 그려낸 설계도면들은 한 폭의 수묵 풍경화를 연상케 한다. 입궁자의 시선 이동에 따라 건물의 상하좌우를 변형시켜 표시함으로써 건축 도면으로써의 실용성도 충분히 담아내고 있다.
수원 화성 북쪽 출입문의 설계도면인 '장안문 외도'도 한 장의 그림에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 밑에서 올려본 모습, 정면에서 본 모습 등 다양한 시선에 따른 장안문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그려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외에도 경천사지 10층석탑을 복원하기 위해 그린 '경천사탑 입단면도', 신라문화제 가장행렬을 위한 '왕 우마차도', '금산사 미륵전 단면 투시도' 등은 손으로 그린 초세밀화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전시회에서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수원화성의 복원과정이 3D 입체 시뮬레이션으로 재현되며, 장안문과 팔달문, 화서문 등의 도면과 옛 사진도 선보인다.
전통건축물의 도면들은 대부분 공사가 끝난 뒤 보고용으로 만들어졌는데, 이를 보관해야 할 관공서들이 도면들을 홀대했기에 남은 작품들이 많지 않다. 오선화 학예사는 "전통 건축물 복원에 중요한 도면들이 국가적 차원에서 보존가치가 인정되지 않고 있다"면서 "이번 전시가 전통건축도면의 보관과 연구의 시작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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