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Eurasia) 시대로 가는 한ㆍ러 파트너십'을 주제로 열린 제2회 유라시아 포럼이 지난주 제주 하얏트리젠시호텔에서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산하 세계경제연구소(GPECㆍ주임교수 이창주 박사)와 해외동포 싱크탱크인 국제한민족재단이 공동 주최한 이번 포럼에서는 6자회담 재개와 이명박 대통령의 11월 러시아 방문을 앞두고 새롭게 조명받는 한ㆍ러 관계가 집중 논의됐다. 주요 발표문을 요약한다.
러시아의 새로운 동진정책
러시아가 평양으로 가는 철도ㆍ가스ㆍ전력 라인을 따라 동진정책을 진행하고 있다. 소련 해체 후 러시아는 남한과의 외교에 비중을 두면서 북ㆍ러 관계는 상대적으로 냉각되었으나 2000년 푸틴 집권 후 남북한 균형정책을 실시했다. 러시아 지도부는 동북아와 한반도 국제정치에서 발언권과 영향력을 강화하고 균형자적 역할을 담당하는 대국의 위치로 복원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 핵심에 러ㆍ북 관계 개선이 놓여있다.
북ㆍ러 관계 개선은 동북아지역의 경제공동체와 한반도 통일에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연해주에서 열린 남ㆍ북ㆍ러 철도운영자회의를 통한 한ㆍ러, 북ㆍ러 철도협력 양해각서 체결, 북ㆍ러의 1,100km 천연가스관 설치 합의는 동북아와 한반도 안정에 서광이 될 수 있다. 북ㆍ러 국경철도 현대화에 투자가 진행되고 항만시설도 건설되고 있다. 이는 중국에도 긍정적 기여를 할 수가 있다. 러시아와 중국이 공동으로 북한을 원조하게 되면 북한의 경제와 개혁개방에 도움이 되어 중국의 부담을 덜어주고 북한의 중국 속국화 우려와 반발을 불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이다. 대미 의존, 한ㆍ미ㆍ일 공조의 대결정책으로는 남한은 북한과의 관계에서 소외되거나 당사국의 지위를 잃어버리는 처지가 될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세력들의 권력구조와 이해관계가 재편되고 동북아의 신질서가 예고되는 전환기를 맞아 한국 정부도 대비하고 행동하는 자세와 정책이 절실하다.
이창주/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국제학부 석좌교수ㆍ국제한민족재단 상임의장
미래지향적인 한ㆍ러 관계의 발전
북핵 문제와 천안함, 연평도 사건 등으로 동북아지역에서 평화메커니즘 구축의 중요성이 제기되었다. 한반도 핵 문제는 러시아에도 아주 민감한 사안이며 이를 비롯한 한반도문제 해결의 최적 방안은 6자회담이다. 러시아는 회담의 신속한 재개를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 북한이 6자회담에 참여하도록 회유하는 조치들이 추진되고 있고, 다른 당사국들과 양자 혹은 다자간 회담을 통해 6자회담이 성사되도록 노력해 왔다. 그 결과 올해 초 한반도 긴장 완화, 북한의 6자회담 재개 전제조건 철회 등 긍정적 성과를 거두었다.
러시아는 가스, 전력에 석유까지 더한 '동아시아 통합 에너지체계' 전략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남북과 중국, 일본도 포함할 수 있다. 극동과 동시베리아 개발 계획은 내년 3월 러시아 대선에 상관없이 계속 추진될 것이다. 북핵 문제를 넘어 동북아 경제ㆍ안보공동체 구축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 위한 정치적 조건으로 남ㆍ북ㆍ러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 우리는 준비돼 있다. 파트너들의 의지에 달렸다. 외교 이외에 북핵 해법은 없다. 6자회담은 핵문제 해결 최적의 방안이다. 6자회담 당사국의 안보를 보장하는 다자간 협약도 체결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는 이웃인 북한의 안정과 번영을 바란다. 미래에 남북이 러시아와 친밀한 통일국가를 만들기 바란다.
콘스탄틴 브누코프/ 주한 러시아 대사
한ㆍ러간 전략적 동반자관계와 남ㆍ북ㆍ러 삼각협력
한ㆍ러 관계의 전개 과정은 1990년 9월 수교 이래로 상대방에 대한 과도한 기대에 기반한 '과열기'(노태우 정권 시기)를 짧게 지낸 뒤, 상대에 대한 실망으로 인한 급속한 '냉각기'(김영삼 정권 시기)를 지나, 소강상태의 '관리기'(김대중 정권 시기), 안정적인 '발전 모색기'(노무현 정권 시기)를 거쳤다. 그리고 2008년 이후 '전략적 동반자관계' 추진 시기에 진입한다. 양국관계의 형식상의 격상과 내용상의 심화를 위한 시도가 이명박 정부에 의해 추진되었으며, 러시아 정부도 이에 화답하였다.
하지만 북핵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국가이익의 구성은 정책적 딜레마를 던지고, 북한 문제는 한ㆍ러 관계 발전을 저해하는 최악의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양국관계는 양자관계와 실질협력을 중시하는 한 축과 남ㆍ북ㆍ러 관계 그리고 동북아 지역협력 또는 지구적 의제에서의 협력이라는 또 다른 한 축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이 어디인가를 찾는 전략적 협력의 모색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011년 러ㆍ북 정상회담 이후 실현가능성이 높아진 남ㆍ북ㆍ러 가스관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다면 이는 한반도와 동북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3자간 프로젝트를 형태적으로 유지하지만, 내용적으로는 동북아 국제프로젝트의 성격을 지니도록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를 통해 발생할 북한의 변화 가능성을 촉진하고, 동북아지역 수준의 에너지 협력틀로 발전시킬 수 있는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신범식/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유라시아 시대와 러시아 대외정책의 한반도 문제
러시아는 그동안 한반도 외교에서 경제적으로는 남한, 정치적으로는 북한이라는 정경 구분 방식을 취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북한과의 관계를 정치 경제 군사까지 망라하는 동맹적 수준으로 격상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왜 이렇게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일까. 첫째 한반도 안정이 러시아의 동진정책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둘째 현재의 미ㆍ중 구도로는 동북아의 패권 경쟁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아시아태평양지역 전체에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미국ㆍ일본ㆍ남한 대 러시아ㆍ중국ㆍ북한의 대립구도 형태를 균형적 공존 질서로 바꾸어 보겠다는 의도이다. 넷째 지정학적으로 태평양 유라시아의 중심부에 위치한 러시아가 이 지역에서의 역할을 중추적으로 향상시켜 영향력 있는 핵심 국가가 되겠다는 것이다. 다섯째 이를 통해 향후 한반도 통일에 대비하고 기여하는 국가가 되겠다는 것이다.
2012년 러시아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대북관계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이는 남북관계에서나 국제정치적인 면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러시아가 구상하고 추진하는 한반도 관통 파트너십 프로젝트가 실현되면 한반도 안정은 물론 동북아의 평화, 안보에 결정적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리 아키모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국제관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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