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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 '서울의 한옥 연구' 건축가 조정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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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 '서울의 한옥 연구' 건축가 조정구씨

입력
2011.10.30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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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갈아엎고 살던 사람 쫓아내는 그런 개발의 시대는 끝내야"

건축가 조정구(44ㆍ구가도시건축 대표)씨는 서울 북촌의 한옥을 살리고 경주의 한옥식 호텔 '라궁'을 지은 한옥 전문가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진면목은 11년 동안 서울의 골목을 좇아 다닌 답사에 있다. 서울대 건축과와 대학원을 나오고 도쿄대 박사과정에서 분꾜꾸원이라는 언덕을 연구했던 그는 2000년에 건축설계사무실을 차리자 매주 하루 서울의 마을을 찾는 '수요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비가 너무 쏟아지거나 외국출장 중인 몇 주를 빼고는 요일을 바꿔서라도 동네를 훑었다. 마을과 집, 골목을 걷고 관찰하고 사진 찍고 마침내는 정밀한 건축지도로 그리고 답사보고서까지 쓴다. 지도는 1912년에 만들어진 서울 최초의 지적도에 견줘가며 골목은 언제부터 형성되었고 집들은 언제 지어진 것인지는 물론 골목의 자전거, 옥상의 화분까지 담았다. 온 서울을 555회나 발로 밟은 결과 그는 허름한 동네도 사람들이 떠나지 않게 천천히 고쳐나가면 더 아름답고 생기 넘치는 도시가 된다고 확신한다. 그는 박원순 새 서울시장에게 이런 서울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한다.

_구가도시건축이라는 이름이 재미있네요.

"조정구네 집, 구가(九家)라는 뜻으로 지었습니다. 건축설계를 하면 빌딩이나 대형 건축물을 생각하는데 저는 처음부터 살림집 밥집 작은 가게처럼 이웃의 근생건물, 내 삶과 가까운 98%의 집을 짓고 싶었어요. 실제로 제가 지은 집도 중산층 전문직의 살림집이 제일 많아요."

_답사도 그래서 시작하신 건가요?

"그렇지요. 서울이라는 도시가 어떤 곳인지 사람들이 사는 집이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배우고 싶었어요."

_그래서 찾아낸 우리 고유의 집은 어떤 것인가요?

"우리나라 집의 원형은 마당집이에요, 한옥이 아니고. 마당 없는 한옥하고 마당이 있는데 한옥이 아닌 집 가운데 택하라면 저는 당연히 마당있는 집입니다. 원래 사랑채 안채 행랑채 다 있는 전통가옥이 도시한옥으로 들어오면서 마당 딱 하나에 안채 바깥채 정도를 가져 왔어요. 마당을 갖고 온 것은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이잖아요. 불도 때야 하고 빨래도 말려야 하고 살림도 하고 잔치도 치르고. 볼거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일상부터 의례의 역할까지를 다 하는 공간, 쓰임새 중심의 마당이자 삶에 굉장히 밀착되어 있는 마당. 이건 부엌하고만 연결된 유럽의 마당이나, 일본의 광정하고도 다릅니다. 한옥이 개량 기와집으로 옮겨가면서도 마당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거든요. 저도 어려서 살던 집이 계단 올라가면 철대문 나오고 마당 나오고 ㄱ자 개량 기와집이었어요. 심지어 산동네 아주 작은 집조차 ㄱ자 집이 많아요. 그렇게도 마당을 못 만들면 옥상에라도 마당을 품으려고 애를 쓰지요."

_이런 전통을 살려주는 것이 중요한 건가요?

"그럼요. 사람들이 어떤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나를 찾아줘야 좋은 건축이니까요. 그런 게 전통에는 녹아있거든요. 이건 꼭 집 한 채에서만 아니라 마을이나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역사성을 따라가보면 사람들이 원하는 마을의 모습, 마을이 모여서 형성된 도시의 모습도 자연스레 나오고요."

_그래서 찾아낸 서울의 원래 모습은 뭔가요?

"서울이란 데가 조선시대부터 동네동네가 포도송이처럼 연결되면서 형성된 곳이거든요. 이 포도송이 하나 하나를 살려주는 게 중요한데 조금만 낡아보이면 확 갈아엎고 빌딩을 세우는데 이건 살고 있는 사람들을 내쫓는다는 점에서도 나쁘지만 지역의 아름다움이나 역사성, 재미까지 죽여버리고 있어요. 창덕궁 맞은 편에 순라길이 있잖아요. 원래 이 길은 포졸 두 명이 순라를 돌다가 저쪽에서 이상한 놈이 오면 그냥 잡히는 좁은 길이에요. 허리가 잘록하게 생겨서 되게 재미있었는데 그걸 부수고 이상한 공원을 만들었어요. 순라길이면 순라길의 스케일과 정신이 있어야 하는데 그걸 다 지우고 잘했다 그러면서 역사성을 찾는다고 또 새로운 걸 지어요. 이런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면 이탈리아의 오래된 도시를 일부러 찾아가서 아름답다고 해요. 종로1가와 피맛골도 싹 엎었는데 제가 그 지역도 실측조사를 했어요. 이조라는 한옥으로 된 식당에 갔더니 그 집 마당에 큰 우물이 있어요. 이게 분명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우물인데 이런 걸 싹 뭉개버리고 정말 뭐하자는 것인지."

_그럼 어떻게 하는 게 서울을 살리는 길인가요?

"서울은 이미 답이 있어요. 강남이나 주변은 첨단으로 개발하고 강북은 역사도심을 근거로 해서 역사와 문화가 느껴지는 도시로 만들면 되거든요. 강북을 더 강북답게, 자연속의 도시를 살려라. 또 하나 이야기하면 사람을 떠나보내지 마라. 있는 사람들이 좀더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라. 원래 있던 동네를 다 없애고 잘사는 사람이 와서 살면서 잘사는 동네가 됐다고 이야기하는 건 아주 웃긴 거잖아요. 아는 사람도 없는데 잘사는 동네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_그래서 삼선교의 재개발구역인 장수마을(삼선4구역)을 살리는 일에도 앞장섰지요.

"2006년에 낙산공원쪽을 답사하면서 서울성곽 쪽을 걷다가 암문이 있기에 그리로 나갔더니 마을이 나오는 거예요. 리어카가 지나다닐 정도의 좁은 길을 두고 성곽 바로 옆에 가게도 있고 집도 있고 정말 굉장했어요. 속된 말로 야, 이건 죽인다 그랬는데 그 때는 뭐 나중에 다시 오면 되겠지 하고는 문 안으로 되돌아가서 답사를 계속했어요. 2008년쯤에 한국도시연구소에서 이 마을을 살린다고 발표하는 것을 듣고 찾아가보니 성곽 밑의 집들이 싹 없어지고 큰 길이 났어요. 그 아래로 축대를 쌓아서 마을은 그 아래만 남고 동네 왼편도 집들도 없어지고 공원이 들어섰어요. 그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겠어요? 그러니까 문화유적을 살린다는 이름 아래 훨씬 더 역사성 있고, 볼거리 많은 공간이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삶터인 곳이 완전히 해체가 된 거잖아요. 그래서 남은 곳이라도 살려보자고 동네지도를 만들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사연도 듣고 주민들의 희망사항도 들었어요. 제가 작년부터 바빠지면서 많이 개입은 못하고 직원 두명만 참여를 시키는 수준인데 그래도 이곳은 박학룡씨라는 지역활동가가 '동네목수'라는 마을기업을 만들어서 지역주민들을 고용해서 헌집을 고치고 동네를 살리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으니까 희망이 있지요. 그러나 도시가스가 안들어온다거나, 국공유지를 쓰는 데 따른 변상금 체납 같은 근본적인 문제는 역시 지방정부에서 나서줘야 합니다."

_서울의 역사성을 살린다는 것이 낙후되어 보이는 것과 충돌을 일으키기도 하지 않나요?

"2001년에 북촌에 들어가서 한옥을 한 채 고칠 때도 북촌은 낙후되어 있다고 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북촌이 살아나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찾아서 걱정일 정도잖아요. 이제 서촌도 그렇게 될 거고요. 서대문의 성곽 아래쪽인 교북동 교남동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동네거든요. 그런데 거기도 뉴타운 지정이 되었어요. 더 대표적인 데는 세운상가. 세운상가가 흉하다고 부수고 공원을 만들거라면서 두 블록 건너 종묘 앞에 더 높은 빌딩 세웠잖아요. 말이 안되는 일이지요. 세운상가는 몰라도 주변은 조선시대 필지 그대로이고 오래된 한옥들도 그대로 살아있어요. 건드리면 안됩니다. 이곳에는 한옥들이 엄청나게 큰 샌드위치 패널지붕 밑에 덮여있어요. 위에서 보면 엄청나게 지저분하고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선시대부터 사람들이 다니던 골목길이 실핏줄처럼 얽혀 있고 지금도 사람들이 사는 생활 생태계도 엄청나게 좋아요. 공구상들이 들어와서 가게를 잡아놓고 부품가공도 하고 철판가공도 하고 판금도 했기 때문에 지금 그 조직과 골목이 살아있죠. 요즘은 공장도 좋은 관광코스가 되잖아요. 이런 걸 살리면 됩니다. 돈화문 위쪽과 종로 북쪽에 귀금속 상가 같은 것은 여기보다 더 조건이 좋아요. 한옥 안에 이런 귀금속 가공공장이 들어서 있거든요. 여기가 관광코스가 된다면 지역주민들이 떠나지 않고 잘 살수 있고 서울의 역사는 역사대로 살리는 일이 됩니다. 북촌이랑 삼청동에 왜 그렇게 사람들이 몰리겠어요. 서울에 볼 것이 없어서거든요. 20년 계획만 세우고 차근차근해 해나가면 서울을 역사도심으로 살리면서 경제적 가치도 살리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요. 용두동의 단독주택가, 성북동 혜화동 같은 오래된 주택가도 다 그대로 살리면서 살아나는 방법이 있습니다."

_세운상가의 경우 이명박 시장 때부터 이곳을 재개발한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받아들일까요?

"거기 현재 계시는 분들은 임대세입자라 별 말이 없는데 주인들은 그런 말도 해요. 인사동처럼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만 해준다면 따르겠다. 공구상들 옮긴다고 (송파구 문정동에) 가든파이브 만들었는데 아무도 안 가잖아요. 그러니까 잘못된 계획은 엎고 새로운 서울을 위해 계획을 새로 짰으면 좋겠어요"

_그럼 새로운 서울을 위해 우선 무슨 일이 필요할까요?

"사실 이 모든 일이 시민들의 문화의식이 높아지지 않으면 다 소용이 없어요. 사람은 형편대로 사는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라면 여기서 못살아, 보기가 싫어서 안되겠어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형편에 맞게 사는 것이기 때문에 그걸 받아들이고 오히려 거기서 안전이나 환경의 문제를 개선해줘야 하는 것이지요. 도시계획이라는 것이 개인의 재산권을 펼치게 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자산으로서의 경관도 가치도 역사도 찾아주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공공이 적극적으로 개입을 해서 서울이라는 지역의 보다 나은 가치를 찾아줬으면 좋겠어요. 달리 말해 문화를 지키려면 많이 때려 부수면 안되고 사람을 생각하면 사람을 내보내면 안되고, 되게 단순한 원칙이 있잖아요. 서울은 지금까지 그 원칙을 안 지키는 도시였어요. 이제 서울에 대한, 서울의 도시개념을, 도시철학을 박원순 시장이 만들어서 서울헌장 같은 것을 선포했으면 좋겠어요. 그 헌장에 따라 제도가 움직이고 마을이 달라지고 집들도 달라지는 그런 서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허름한 동네가 아니면 아파트라는 방식을 선택할 수 밖에 없고, 다가구 주택을 고치는 것도 기껏 주변은 2층짜리 단독주택인데도 5층까지 지을 수 있게 해서 주변 집들을 그늘 속에 가려버리는, 그러니까 한 방향으로만 선택이 가능하고 그걸 선택해버리면 주변은 모두 누추해지는 그런 정책을 펴고 경제적으로도 그 한쪽으로 가는 게 더 이익이 되는, 약자들이 힘들게 되는 그런 도시였어요. 새로운 것이 들어가서 있던 것들이 초라해지는 개발은 아니다, 새로운 것이 오래된 것을 비루하게 보이게 한다거나 마치 있어서는 안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개발의 시대는 끝났으면 좋겠어요."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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