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단풍이 들고 추워지면 낙엽이 진다. 단풍과 낙엽은 겨울을 대비하기 위한 식물의 생존전략이다. 식물은 종자가 싹 트고 자라서 꽃피고 열매를 맺는 일련의 생로병사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는 식물호르몬과 항산화물질 등 다양한 생장조절물질이 작용한다. 단풍과 낙엽은 일종의 노화와 죽음의 과정이며 여기에는 식물의 생장을 억제하는 호르몬인 에틸렌과 아브시스산 (ABA)이 중요하게 관여한다.
간단한 탄화수소 기체인 에틸렌(C2H4)은 과일의 성숙과 식물조직의 노화를 촉진시키는 식물호르몬으로 특히 가을철 기온이 내려가면서 많이 발생되어 광합성의 주요 색소인 엽록소를 분해시킨다. 가을철 엽록소가 분해되면서 엽록소 때문에 보이지 않던 붉은색계통의 카로틴이나 노란색계통의 크산토필이 나타나고 붉은색 계통의 안토시아닌도 왕성하게 생성된다. 이들 색소성분에 의해 나뭇잎이 붉게 또는 노랗게 보이는 단풍으로 변신한다. 카로틴과 크산토필은 이른 봄부터 광합성을 하는 엽록체에서 만들어지지만 가을에서야 본색을 나타낸다.
흥미롭게도 카로틴, 크산토필(루테인이라고도 함), 안토시아닌은 식물의 대표적인 항산화물질이다. 항산화물질은 스트레스 환경에서 많이 발생하여 노화와 질병을 유발시키는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물질이다. 가을철 기온이 낮아지고 극심한 노화과정에서 발생되는 활성산소를 제거하기 위해 가을철 잎에는 항산화물질을 많이 만들 필요가 있다. 엽록체는 빛에너지를 흡수해 이산화탄소와 물로부터 탄수화물과 산소를 생산하는 광합성을 하는 세포 소기관으로 산소농도가 높다. 외부 환경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정교한 식물공장의 핵심부인 엽록체는 활성산소가 많이 발생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생존전략으로 엽록체에 비타민C, 카로틴, 크산토필 등 항산화물질을 많이 만들면서 진화해 왔다. 극한 환경에서 자라는 식물은 항산화물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단풍이 든 후 기온이 뚝 떨어지면 식물은 낙엽진다. 여기에는 카로틴이 더욱 대사되어 만들어지는 ABA가 직접적으로 관여한다. ABA는 수분이 부족하거나 추위와 같은 스트레스 환경에서 많이 만들어 진다. ABA는 가을철 나뭇잎과 가지 사이에 떨겨층(탈리층)을 형성하여 잎을 떨어뜨린다. 겨울에 물이 부족하면 물의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잎의 호흡을 담당하는 기공은 닫힌다. ABA는 기공을 닫게 하여 수분의 손실을 막아준다. 기공은 수분을 증발시킬 뿐만 아니라 광합성에 필요한 이산화탄소가 들어오는 통로이기도 하다. 따라서 수분부족을 피하기 위해 기공이 닫히면 잎에서 광합성이 일어날 수 없게 되고 결국에는 잎은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식물은 자기 몸(잎)을 도려내면서까지 생존전략을 세우는 셈이다.
잎을 떨어뜨리기 전에 엽록소와 단백질 등은 다음에 활용하기 위해 분해되어 줄기나 뿌리 쪽으로 이동해 간다. 침엽수 역시 겨울에는 광합성 등 대사작용이 줄기 때문에 불필요한 에너지소비를 줄이기 위해 몸을 움츠린다. 침엽수는 낙엽수와 달리 어느 정도 몸의 부피를 줄이는 선에서 잎을 떨어낸다. 최근 식물생명공학자들은 식물호르몬의 함량을 인위적으로 조절하여 잎의 노화를 지연시키거나 가뭄조건에도 잘 자라는 식물을 개발하고 있다. 식물의 생존전략을 잘 이해하면 식물의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곽상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U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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