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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석 원정대 수색 종료/ 히말라야 14좌·7대륙 최고봉·3극점 그랜드슬래머 박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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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석 원정대 수색 종료/ 히말라야 14좌·7대륙 최고봉·3극점 그랜드슬래머 박영석

입력
2011.10.30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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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걸음마를 하잖아요? 그게 아마 최초의 도전 아닐까요? 모든 인간의."

안나푸르나에 새 길을 내러 떠나며 후원사(노스페이스) 홈페이지에 남긴 인터뷰에서, 박영석은 "첫 도전이 뭐였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삶과 도전은 그에게 다른 말이 아니었다. '인류 최초의 산악 그랜드슬래머'라는 거창한 호칭은 머무를 영광이 아니라 더 거친 세계로 모는 채찍이었다. 30일 도전을 멈출 줄 모르던 산꾼의 혼백은 히말라야 설산의 일부로 남게 됐다. 베이스캠프에서 동료 대원이 만들어준 마흔여덟 번째 생일(13일) 케이크를 자른 지 17일 만이다.

박영석은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안 해본 운동이 없었다. 사격 선수 생활을 하던 고교 2학년 때 서울시청 앞에서 카퍼레이드를 벌이는 마나슬루(8,163m) 원정대를 보고 산악인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동국대 체육교육과에 진학한 뒤 산악부에 가입해 산꾼으로 단련을 시작했다. 1993년 아시아 최초로 에베레스트(8,848m)를 무산소로 등정해 주목 받은 뒤, 8년 만인 2001년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세계 최단 기간 완등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후 그랜드슬램에 도전, 2002년 7대륙 최고봉을 완등하고 2005년 3극점 도달까지 마무리 지었다. 세울 수 있는 기록은 다 세웠다는 말을 들었다. 이런저런 편한 자리로 오라는 제의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도전을 발표했다. 히말라야 14좌에 '코리안 루트'를 내겠다는 선언. 지상 최대의 거벽에 한국인의 힘으로 남들이 간 적 없는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계획이다. 숱한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았다. 2009년 히말라야 남서벽에 코리안 루트를 뚫은 것은 다섯 번의 도전 끝에 이룬 결실이다.

산은 그에게 영광만큼 많은 시련도 줬다. 1993년 에베레스트 남동릉에서는 동행한 학교 후배 둘이 추락해 죽었다. 1996년 같은 산 북동릉에서는 셰르파 우두머리가 사망하고 자신은 갈비뼈 두 대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2007년 에베레스트 코리안 루트 개척 시도 때는 7,900m 캠프에 머물던 후배 둘이 눈사태에 밀려 1,300m 아래로 추락해 사라졌다. 5년 넘게 한 지붕 아래 살며 피붙이처럼 지내던 대원들이었다. 이후 한동안 술독에 빠져 살기도 했다. 그때마다 혈관 속에 끓는 도전의 피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박영석은 유난히 숫자에 집착하는 산악계 풍토에서 '등로(登路)주의'로 방향을 틀고 실천한 인물이기도 하다. 등로주의는 남이 닦아 놓은 쉬운 길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미지의 길, 힘든 길을 셰르파나 산소탱크 등 특수장비의 도움 없이 오르는 알피니즘을 일컫는다. 간단히 말하면 결과보다 과정에 가치를 두는 등반 정신. 8,000m급 14좌 완등자가 너댓 명이나 나왔지만 한국 산악계는 여전히 정상에 오르는 것에 최우선 가지를 두고 기록 경쟁에 몰두하는 '등정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코리안 루트 개척에는 극한의 등반을 통해 모험을 추구하는 박영석의 도전정신이 응축돼 있다.

이인정 대한산악연맹 회장은 29일 네팔 카트만두에서 한국 언론에 수색 종료 결정을 전하며 "그는 산에 못 가게 하면 죽는다. 그는 죽음으로써 살아난 것이다"고 박영석을 기렸다. 이 회장은 "그가 대중 앞에 잘 나서지 않은 까닭은 스스로가 잘나서가 아니라 산이 자신을 살려서 그랜드슬램이 가능했다는 겸손함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박영석은 지난해 박영석탐험문화재단을 만들어 청소년과 장애인에게 탐험 기회를 주는 후원 활동도 해왔다.

17일 후원사 홈페이지에 게재된 안나푸르나 원정대 일기에는 박영석의 마지막 숨소리가 담겨 있다. 13일 밤 베이스캠프에서 전진캠프로 떠나기 직전 한 대원이 작성한 글이다.

"밤이 찾아왔다. 오늘까지 흐뭇했던 우리들의 시간도 이젠 물러나야 할 때가 왔다. 드디어 박 대장이 등반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마음이 쪼그라질 정도로 어마한 남벽 아래 서서 긴 호흡 한번 내쉬고 없는 길을 우리는 가야 한다. 길은 오로지 우리 몸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밀고 나가야 한다. 어떤 행운도, 어떤 요행도 없으며 위로도, 아래로도 나 있지 않은 길을 살아야 돌아와야 한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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