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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충적세 문명' 중병 앓고 있는 문명… 구원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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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충적세 문명' 중병 앓고 있는 문명… 구원은 어디에

입력
2011.10.28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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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적세 문명/김유동 지음/길 발행·600쪽·3만원

지구 나이 45억년에서 인류 문명이 등장한 지는 1만년,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그 시간을 지질시대 구분으로는 '충적세'라 부른다. 신석기혁명으로 농경을 시작하면서 싹튼 문명은 근대 산업혁명에 따른 대전환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여정을 걸어왔다. 하지만, 인류가 이룩한 자랑스런 문명은 지금 중병을 앓고 있다. 환경 파괴와 극에 달한 자본주의의 횡포는 삶의 토대와 문명 자체를 위협하는 데 이르렀다.

쿠오 바디스? 갈 데까지 갔다는 위기감이 던지는 이 질문이 아도르노 연구자인 독문학자 김유동(경상대 교수)이 쓴 <충적세 문명> 의 출발점이다.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인류 문명사 1만년의 궤적을 인문학자의 눈으로 읽어낸 책이다.

굳이 '충적세'를 부각한 것은 자연과 대비되는 관념으로서 문화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기 위해서다. 문명의 기원부터 21세기 후기자본주의까지 문명사의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저자는 동서고금을 종횡으로 내달리며 각 문화권의 문화구조를 비교하고 문화구조들 간의 상호작용과 연결 맥락을 해석해 나간다. 이를 위해 신화부터 문학ㆍ역사ㆍ철학ㆍ역사까지 두루 꿰는데, 그 폭과 깊이가 특별하다. 지리산 자락에서 십수년 간 칩거하며 공부한 결실이라고 한다.

저자는 오늘날 문명의 위기를 필연적 업보라고 본다. 모든 문명은 소유와 지배를 낳고, 그것이 거대한 지배 구조인 도시문명으로, 다시 통제 불능의 자본주의와 산업사회로 이어지면서 인간과 자연, 문명이 모두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심지어"충적세 1만년 동안 인간이 벌인 희비극은 어쩌면 일장춘몽이 아닐까"라고 묻는다.

그럼 이제 어쩌란 말이냐. 저자는 구체적 대안이나 전망을 내놓지 않는다. 다만 동양의 문화구조는 서양보다 덜 대립적이며 좀 더 조화롭다고 보고, 동양이 서양에 대해 비판적 척도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내용도 분량도 방대한 이 책은 중간중간 '간주곡'이라는 이름으로 동서양 신화와 고전 14개를 삽입해 고전으로 문화 읽기 혹은 문화로 고전 읽기를 보여준다. 고대 서사시를 비롯해 반야심경과 노자의 '도덕경', 그리스 비극, 세르반테스ㆍ괴테ㆍ카프카의 문학작품 등이다. 마르케스의 '100년의 고독'을 '충적세 1만년의 고독'으로 읽는 독법은 특히 인상적이다. 비서구가 서구문명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소외, 신화적이고 원초적인 것과 문명적인 것의 대결을 그린 이 소설에서 저자는 문명의 원죄와 현재 좌표를 파악하는 혜안을 드러낸다.

저자는 아도르노가 말한 '구원의 관점'을 인용함으로써 책을 쓴 목적을 요약한다. "절망에 직면해 있는 철학이 아직도 책임져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사물들을 구원의 관점에서 관찰하고 서술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한다." 이론적 정밀함이나 야심찬 결론을 추구하지는 않지만, 웅숭깊은 통찰과 막힘 없이 흘러가는 풍성한 논의로 읽는 즐거움을 주는 책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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