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 천 개의 얼굴/웨이드 데이비스 지음·김훈 옮김/다빈치 발행·320쪽·2만원
서구식 개발주의가 세계의 구석구석을 파고들고 있다. 많은 이들이 부유함과 안락함에 환호해 왔다. 하지만 상위 20%가 부의 80%를 가져가는 지금의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물질문명의 단선적인 흐름을 과연 인류의 진보나 발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세상 끝 천 개의 얼굴> 은 문화적 다양성이 결여된 채 물질만 좇는 현대사회의 패러다임에 의문을 제기하는 책이다. 캐나다 출신의 인류학자이자 민속식물학자인 웨이드 데이비스가 어린 시절부터 40여년 간 방문한 전 세계 토착 사회를 세밀히 관찰해 기록한 에세이다. 콜롬비아 고산지대의 코기, 에콰도르의 와오라니, 아마존 북서부의 바라사나, 보르네오의 프난, 캐나다 누나부트 지역의 이누이트 등 토착 사회 사람들의 생활상과 그들의 역사를 여행 수필 형식으로 전한다. 세상>
서구 탐험가의 오지 탐험 기록은 서구인의 우월한 시각에서 기록되기 십상이지만 저자는 토착 문화를 체험하면서 새로운 삶의 형태와 사고방식을 배웠다고 강조한다. 특히 그는 이들 토착 사회가 자연 환경과 인류의 소망과 꿈이 긴밀히 연결돼 있다거나 공생하려면 '나'가 아닌 '우리'가 더 중요하다는 등의 삶의 중요한 덕목을 공통적으로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보르네오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프난 족 아이들은 코뿔새들이 나는 모습에서 앞날의 조짐을 찾는다. 저자는 이처럼 잠재력과 통찰의 보고인 토착 문명의 기반이 개발주의로 붕괴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저자가 자신이 접한 다양한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부각시키고자 한 핵심은 인종권(ethnosphere)이라는 개념이다. 인간의 상상력으로부터 생성된 모든 사상과 이상, 신화와 통찰의 총체라는 의미로 제시한 말로, 하나의 인종이 사라지면 그에 속한 인간의 사고도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문화 다양성의 파괴로 단일종의 문화가 정착되고 인류의 모든 상상력이 단 하나의 정신적 양식의 한계에 갇히는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셈이다.
글과 함께 실린 저자의 사진도 문화 다양성 메시지에 강력한 힘을 보탠다. 저자의 공감이 스민 덕에 토착 사회의 단면은 매혹적인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재발견하게 하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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