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학계 '자유민주주의' 맞짱 토론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학계 '자유민주주의' 맞짱 토론회

입력
2011.10.28 13:18
0 0

"이승만 김구 송진우 등은 어디에서도 자유민주주의를 얘기하지 않았다. 1948년 건국헌법의 특징은 혼합정부와 균등경제 체제로 사회민주주의에 가까웠다."(박명림 교수)

"그러면 이승만이나 김구가 인민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를 주장했다는 건가."(권희영 교수) "위험한 질문이다. 사람이 세가지 종류밖에 없나. 당시 그들은 무슨 주의자로 얘기하지 않았다. 이승만은 공산주의자를 애국자라고도 했다. "(박명림)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동 4ㆍ19혁명기념도서관 회의실에서 열린 보수-진보 학계간 '자유민주주의' 맞짱 토론은 시종 팽팽했다. 최근 역사교과서 개편 논란의 핵심인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관점을 비롯해 한국 현대사에 대한 해석, 교과서 집필기준안까지 첨예하게 맞부딪혔다. 사회를 맡은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 교수가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끌긴 했으나 양측의 주장은 날카롭게 평행선을 그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진보 측의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보수 측의 한국현대사학회와 공동 주최한 이날 토론은 논쟁의 당사자 격인 학자들이 직접 얼굴을 맞대고 공개 토론을 벌인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보수 측에선 김용직 성신여대 교수가, 진보 측에선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발제를 맡았고 토론자로는 교과서 개편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 용어 삽입을 주도한 한국현대사학회의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 진보 측에선 역사교과서 개편작업에 참여했다가 사퇴한 오수창 서울대 교수, 정태욱 인하대 법대교수가 참여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김용직 교수의 발제 요지는 자유민주주의가 시민적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삼권분립, 보편선거, 언론 결사 종교의 자유 등을 핵심 제도로 삼는 서구 문명의 대표적 정치모델이며 전 세계의 보편적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이는 경제 영역이 배제된 정치체제로서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원론적 해석을 강조한 것이다. 김 교수는 "자유민주주의를 보는 관점에 간극이 있는 것 같다"며 "시장만능주의 같은 경제 문제가 아니라 정치제도의 문제인데, 이 틀 안에서 사회민주주의도 포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박명림 교수는 실제 우리 사회에 자유민주주의가 어떻게 도입됐는지를 헌법 등을 통해 실증적으로 규명하며 "사회민주주의가 오히려 자유민주주의를 포괄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임시정부를 비롯해 건국 당시 이승만이나 한민당 등 어떤 정치세력도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지 않았고 경제에선 국유나 공유, 계획경제를 추구했다"며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면 이들이 설 땅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특히 박 교수는 민주주의에 한정된 수식어를 붙여 협소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념을 쪼개면 쪼갤수록 공동체를 파괴하는데, 북한이 인민민주주의라고 한정하면서 나라가 망했다"며 "우리는 두 개의 논리, 두 개의 진영이 결국 나라를 발전시켜 왔던 것인데, 그 합의된 기준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날선 공방이 오갔다. 권희영 교수는 "민주주의라고 하면 인민민주주의도 들어갈 수 있어 분명히 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가 가장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지금껏 교과서에서 민주주의라고 가르쳤는데, 이게 잘못됐다는 얘기냐"며 "북한의 인민민주주의를 누구도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 시점에서 인민민주주의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를 써야 한다는 것은 희극이다"고 받아쳤다.

정태욱 교수는 "현실의 자유민주주의는 전통적 의미의 정치체제가 아니라 시장경제만능주의나 국가권위를 뒷받침하는 이념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고, 오수창 서울대 교수는 "역사 교과서 개편 논의 과정에서 심각한 반칙이 있었다"며 자유민주주의가 삽입된 역사 교육과정의 졸속 고시의 문제점을 거론했다. 오 교수는 "민주주의는 우리가 추구하는 이념으로 합의돼 있지만, 자유민주주의는 학자들조차도 합의돼 있지 않아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없다"고 밝혔다. 반면 김광동 원장은 "기존 역사 교과서가 대한민국은 부정적이고 북한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기술한 것이 문제의 출발점"이라며 "학생들이 우리 역사를 긍정적으로 보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는 학자들과 시민 등 150여명이 참석했고 대부분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으며 뜨거운 관심을 보냈다. 토론 막판 청중석에서 "너희가 말하는 민주주의가 뭐냐"는 고성이 나오기도 했으나, 시종 진지한 분위기에서 토론이 이어졌다. 민교협 사무처장인 김귀옥 한성대 교수는 "결론은 없었지만 그동안 닫혀 있던 보수와 진보간 학자들이 대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고 참석 학자들도 만족하는 분위기다"며 "결국 보수와 진보의 양 날개가 함께 가야 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이런 마당이 더 많이 열려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