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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유세장에서 만난 생활인들

입력
2011.10.2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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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ㆍ26 서울시장 선거 전날 밤 양측 후보의 마지막 거리유세를 보러 갔다. 그 동안의 장ㆍ단점을 보완하여 나름대로 최선의 행사를 마련했을 터이다. 밤 9시30분 중구 명동입구 공터에선 나경원 후보, 조금 후 동대문 두타마당에선 박원순 후보의 유세가 예정돼 있었다.

명동입구는 부산했다. 유세 준비를 하러 온 듯한 ‘관계자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녔고, 수많은 노점과 좌판의 상인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 ‘관계자들’은 “왜 물어요? 당신 누구요?”라고 되물었다. 노점ㆍ좌판상에게 물었더니 “XX, 얼마 전에 민주당 사람들이 왔을 땐 괜찮았는데”라고 욕부터 했다.

“내일 투표 할 겁니까”하고 물었더니 또 ‘XX’을 내뱉고는 “우리는 열 가운데 아홉이 야당 찍으러 갑니다”라고 말했다. 살펴보니 한창 손님을 끌어야 할 그 시간에 좌판과 노점을 쫓기듯 고생스럽게 접고 있었다. ‘관계자들’의 지시하는 모습이 보였다.

두타마당도 부산했다. 떡볶이 오뎅을 파는 노점상도, 액세서리 장난감을 파는 좌판상도 여전히 바빴다. 박 후보가 온다는 것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몰라요. 그렇다면 오늘은 매상이 좀 오르겠네요”하며 즐거운 표정이었다. ‘관계자들’이 박 후보가 도착할 시간이라고 외치고 사람들이 모여들자 그들은 음식과 상품을 더욱 벌여놓기 시작했다.

확성기 사용이 금지된 밤 10시가 지났다. 육성 연설을 듣느라 사람들이 후보 주변으로 몰렸고, 입 소문을 타고 상황이 계속 확산됐다. 좌판ㆍ노점상들이 후보의 모습을 보려고 정신을 팔았다가 고객들로부터 물건 팔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서울시장 선거의 결과는 박 후보가 나 후보에 대해 7%p의 승리로 끝났다. 20대와 30대의 지지 쏠림이 60대 이상과 50대의 그것과 거의 상쇄될 만한 결과였으니 결국 40대가 캐스팅 보트를 행사한 셈이다. 40대 투표자 3명 가운데 2명은 박 후보를, 1명은 나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선거는 중반까지 ‘나 후보냐, 박 후보냐’로 흐르면서 박빙의 형세가 유지됐다. 하지만 종반 네거티브 선거행태가 기승을 부리면서 ‘박 후보냐 아니냐’로 전환됐다. 40대 유권자의 3분의 1이 우려를, 3분의 2가 기대를 표시했다.

우리 사회의 40대는 누구인가. 한때는 ‘386세대’로서 사회변혁의 주체였지만 이제는 식솔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생활인의 중심이다. 명동입구와 두타마당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들이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직장인이든 사업가든, 길거리의 좌판ㆍ노점상과 겉 모습만 다를 뿐 마음과 의식은 거의 일치하고 있다. 누가 와서 유세하든 자신들의 생업과 일거리를 북돋워 주는 쪽이 반가울 따름이다. 직장과 사업의 길을 터주리라는 기대가 박 후보에 대한 우려를 넘어서고 있었다. 25일 밤의 현장을 볼 때 양 후보의 득표차가 오히려 적었다고 여겨진다.

간단한 핵심을 정치권은 에둘러 말하고 있다. 트위터 등 SNS 때문에 선거를 망쳤다는 한나라당의 분석과 고민에 공감하기 어렵다. 전달과 매개 수단인 SNS를 탓하기보다 SNS에 실리는 내용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선거기간에 SNS가 한 일이라고는 이미 공개된 내용들을 옮기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그러기에 SNS가 무섭다거나 우리도 SNS팀을 강화하자는 대책이 엉뚱하게 들리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막아도 자발적으로 전파하고 싶은 내용을 내놓으면 된다.

명동입구와 두타마당으로 집약된 유세 모습들이 선거기간 내내 SNS를 떠돌았다. 편안한 사람이 즐거운 일을 전하고 싶은 마음보다 분노한 사람이 억울한 일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훨씬 큰 법이다. 나 후보 측은 유세를 할수록 표를 깎아먹었고, 박 후보 측은 거리에 나설수록 지지를 얻어간 셈이다. 50대 이상의 세대가 SNS에 익숙하지 않아 그나마 여권의 표를 덜 갉아먹었다는 생각이다.

정병진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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