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사회공헌활동을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그 동안 사회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단순한 의무 정도로 여겨졌던 사회공헌활동이 최근 들어선 사회적 책임 이행은 물론, 지속 성장을 위한 핵심전략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른바 사회공헌이 '기업시민활동' 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최근 각 기업들은 각 사의 향후 비전과 연계시켜 친환경 및 건강과 복지, 정보격차 해소 등 다양한 분야로 사회공헌활동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탈바꿈하고 있는 국내외 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에 대한 의미와 전망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 단순 기부 그만… ITㆍ환경 등 테마 정해 집중 지원
# 지난 6월15일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한 중학교 과학수업 시간. 한 백발 신사가 학생들과 함께 토론에 한창이었다. 주제는 미국 인기 TV 퀴즈쇼에서 우승을 차지한 PC시스템 '왓슨'. 그는 "퀴즈까지 푸는 컴퓨팅 기술은 이제 우리에게 새로운 믿음과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창립 100주년을 기념, 전문성 기부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한 사무엘 팔미사노 IBM CEO였다.
# 지난 22일, 인도에선 1,0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은 현지 아동들에게 금융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다. 말이 교육이지 저축이나 소비지출 같은 예산 세우기와 저축 등 기본 금융교육을 실시했다. 같은 시간, 나이지리아의 빈민촌에선 환경 미화 작업이, 콜롬비아의 주요 공원에선 청소가 진행됐다. 미국 텍사스 산안토니오에선 무료 급식도 시작됐다. 지구촌 곳곳에서 열린 이 행사는 모두 씨티그룹이 정한 '글로벌 지역사회 공헌의 날'에 일제히 이뤄졌다.
글로벌 기업들의 사회공헌엔 '테마'가 있다. 그냥 돈을 기부하고 직원들을 동원하는 옛날식 사회공헌이 아닌, 기업 사업내용과 관련이 있거나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있는 특정 분야를 정해 사람과 돈, 기술을 지원하는 '테마형 사회공헌'으로 진화되고 있다.
미국 최대은행인 씨티그룹의 경우 지난 2006년부터 매년 10월 넷째 주 토요일을 '글로벌 지역사회 공헌의 날'로 정하고, 세계 78개국 4,600여개 도시에서 사회공헌활동을 실천하고 있다. 씨티그룹은 그 동안 세계 각 지점과 현지법인 등이 개별적으로 진행해왔던 사회공헌을 '그린씨티, 클린씨티(Green Citi, Clean City)'란 공동 슬로건으로 묶어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올해로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IBM은 지난 1월부터 전 세계 120여개국에서 40여만명의 전ㆍ현직 직원들이 연간 8시간 이상, 전문성을 기부하는 '셀러브레이션 오브 서비스'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인터넷 검색에서부터 스마트폰 사용법 및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활동을 펼치며 계층간, 지역간 정보격차를 줄인다는 취지. 이 프로그램에는 CEO부터 말단 직원까지 모두 참여하며, 회사 측은 연간 1,200만달러 이상을 쏟아 붓고 있다. IBM관계자는 "IT기업인 만큼 정보격차 같은 IT산업에서 유발될 수 있는 문제점을 해소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면서 "사업과 무관한 분야 보다는 본연의 사업과 관련 있는 쪽에서 사회적 책임을 찾자는 것이 요즘 기업 공헌활동의 추세"라고 말했다.
제너럴일렉트릭(GE)도 마찬가지. 의료사업을 야심차게 추진중인 GE는 건강(health)와 기업이미지를 합쳐 만든 '헬씨메지네이션(healthymagination)을 주제로 건강과 관련된 사회공헌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GE는 향후 6년간 60억 달러를 헬씨메지네이션에 투자, 혁신적인 의료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할 예정이다. 로랭 로티발 GE헬스케어 코리아 사장은 "기업시민의 일원으로 지역 사회를 보다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헬씨메지네이션 구현에 앞장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럽 최대가전업체인 스웨덴 일렉트로룩스는 특이하게도 전 세계 바다에 버려진 폐플라스틱을 수거하는 캠페인을 전해하고 있다. 플라스틱사용이 많은 가전업체인 만큼 스스로 버려진 플라스틱회수에 앞장서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알린다는 취지다.
글로벌 기업들이 이처럼 사회공헌에 주목하고, 특히 테마를 정해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는 건 나눔경영에 대한 인식자체가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는 "과거엔 소비자들이 기업에 대해 좋은 기능과 품질의 제품만을 요구했지만 이젠 사회적 가치까지 요구하고 있다"면서 "그러다 보니 기업이 책임져야 할 대상도 주주과 직원에서 이젠 고객, 협력회사, 지역사회 등으로까지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공헌 자체가 경영의 일부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MS)나 P&G 등 글로벌 기업들은 사회공헌 자체로 끝내지 않고 이 공헌활동이 제대로 효과를 냈는지 검증하는 외부 평가단까지 운용하고 있다.
필립 코틀러 미국 켈로그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시장이 물질적 요구와 감각을 넘어 개인의 자기실현, 공동창조,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영혼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며 "이 시대에는 소비자의 지성과 감정, 영혼에 호소할 수 있는 품격 있는 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 국내 기업도 잰걸음… 아이디어 개발해 아프리카·농촌으로…
국내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에도 변화 바람이 일고 있다. 기부금이나 직원들을 앞세운 산발적 봉사를 넘어 테마와 아이디어로 무장한 신개념 사회공헌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기업답게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테마가 있는 사회공헌활동'을 도입했다. 그 동안 본사 해외법인 등이 각각 진행하던 사회봉사활동을 '어린이에게 희망을(Hope for Children)'이란 단일 테마로 묶어 전사적 캠페인을 시작한 것이다.
IT기업의 특성을 살린 활동도 눈에 띈다. 지난 25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시작한 친환경 이동식학교 '태양광 인터넷 스쿨'은 태양광 패널을 이용해 교실 내 모든 전기를 공급하는 것. 삼성전자 배명달 남아공법인장은 "첨단 IT기업답게 첨단 IT기술을 이용해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사회공헌활동"이라며 "남아공을 시작으로 아프리카 전역에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대기아차도 자동차기업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사회공헌 활동을 선도하고 있다. 지난 8월 정몽구 회장이 사재 5,000억원을 기부해 화제를 모은 해비치 재단은 지난해 3,600여명 이상의 교통사고 유자녀에게 약 30억원을 지원했다. 현대차는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 교통약자를 돕기 위해 기존 차량에 슬로프, 휠체어 리프트, 전동 회전의자 등을 장착한 '이지 무브(Easy Move)'차량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기도 했다.
정수기 1위 업체 웅진코웨이의 유구천 가꾸기 사업도 눈길을 끈다. 웅진코웨이는 2003년 공장이 있는 충남 공주시의 유구천을 '마실 수 있을 만큼 깨끗하게 만들자'며 하천 살리기 운동에 나섰다. 임직원들이 매월 2회 40여명씩 유구천 가꾸기 활동을 진행한 결과 2006년 3급수였던 유구천의 수질은 2009년 1급수로 개선됐다.
금호건설은 건설사 답게 2004년부터 불우이웃을 방문해 집을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해주는 '사랑의 집짓기-어울림가'운동을 실시, 지난 9월 경기 화성시 신천리 마을에 27호를 준공했다.
연탄공장에서 시작해 에너지 전문업체로 성장한 대성그룹은 신재생 에너지 사업인 '솔라윈(SolaWin)시스템'을 개발해 몽골이나 에티오피아 등의 오지에 전기와 식수시설을 공급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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