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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 '죽음의 천사' 28년 만에 종신형 단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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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 '죽음의 천사' 28년 만에 종신형 단죄

입력
2011.10.27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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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끌려가면 두발로 걸어나올 수 없다."

남산(중정ㆍ안기부)과 남영동(대공분실)에서 없던 죄도 만들던 시절,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에도 '에스마'라 불리는 비밀 고문시설이 존재했다. 후안 페론 사후 권력을 장악한 군부정권은 1976~83년 해군기계학교 간판을 단 이 곳에서 반체제인사 수천명을 고문하고 그 중 상당수를 살해했다.

이곳엔 특히 악명 높았던 젊은 정보장교가 있었다. 이제 예순살이 된 알프레도 아스티즈. 훗날 역사가 '더러운 전쟁'이라 이름붙인, 민주화 인사 비밀제거 작전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죽음의 금발천사'란 별명으로 통했다. 수감자의 90%가 살아 나오지 못했다던 에스마가 사라진 지 28년 만에 군부독재 좌파 탄압의 상징적 인물 아스티즈가 역사의 단죄를 받았다.

아르헨티나 법원은 납치, 살해,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된 아스티즈와, 당시 에스마에서 활동했던 전직 장교 및 경찰관 11명에게 26일(현지시간) 종신형을 선고했다. 아르헨티나는 2008년 사형제를 폐지해 종신형이 법정 최고형이다. 법원은 아스티즈 등이 86건의 납치에 가담하고 좌파 운동가들을 고문ㆍ살해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에스마는 정부 공식 발표로 9,000여명, 유가족 주장으로 3만명의 반체제 인사를 납치ㆍ고문ㆍ살해한 군사정권의 비밀 조직이었다. BBC에 따르면 이들은 민주화 운동가에게 마약을 투여한 뒤 비행기에 태워 산 채로 대서양 바다에 던지는 엽기적인 만행도 서슴지 않았는데, 희생자의 시신 대부분은 아직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아스티즈는 구스타보 니뇨라는 가명으로 신분을 속이고 민주화 조직에 잠입, 반체제 지도자들을 꾀어내 에스마로 납치하는 작업에 매우 능통했다. 대문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함께 활동했던 유명 소설가 로돌포 왈쉬, 군부독재 희생자 유가족 협회인 '마요광장의 어머니들'의 대표 아주세나 데 빈센티를 납치한 것도 아스티즈였다. '마요광장의 어머니들'을 후원한 두 명의 프랑스 수녀 납치ㆍ살해에도 가담해 90년 프랑스 법원이 아스티즈에 대해 궐석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군의 포로가 됐던 아스티즈는 이후 본국으로 송환된 뒤 여러 차례 체포됐으나 처벌은 받지 않았다.

2009년 기소를 당했음에도 죄를 뉘우치지 못한 아스티즈는 22개월간 이어진 공판 과정에서 "좌파 테러에서 나라를 구하려 했던 것이고 전혀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고, 자신의 기소를 정치적 보복이라 주장했다.

아스티즈 처벌을 줄기차게 요구해 기소를 이끌어 낸 인권단체와 유가족들은 종신형 선고 소식에 "역사적인 날이 왔다"며 "드디어 아스티즈가 나치의 말로를 맞이하게 됐다"고 기뻐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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