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야권 대표로 출마한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20대, 30대, 40대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20~40대는 왜 이처럼 박원순에 70% 안팎의 몰표를 던졌을까. 젊은 투표자들의 박원순 지지 이유를 들어봤다.
● 등록금·취업난에 분노한 20대
"非정당정치인 뽑아서 서울 바뀌는지 지켜볼 것"
"더 진솔하고 깨끗해 보여" "안철수 지지에 신뢰"
박 후보는 기성 정치인이 아닌 시민운동가 출신이다. 기성 정치권에 대해 불신이 큰 20대는 "박 후보가 변화를 이끌 적격자로 보인다"고 얘기했다. 취업준비생 최유정(27)씨는 "최근 구직을 준비하면서 여러 불공평하고 불투명한 일을 겪었는데 기존 정치권 역시 뭔가 깨끗하지 못하고 어두운 이미지 아니냐"며 "반면 박 후보는 선거자금 모금 과정도 투명해 보였고 주변에서 그를 돕는 사람들도 깨끗해 보여 좋았다"라고 밝혔다.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생 손선혁(27)씨도 "정당정치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을 한 번 뽑아서 서울이 정말 바뀌는지 지켜보자는 마음이 컸다"고 밝혔다. 법률사무소에 다니는 안응필(29)씨는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면 오세훈 전 서울시장 때의 정책과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았다"며 "서울시의 새로운 변화를 기대했기 때문에 박 후보를 뽑았다"고 말했다.
박 후보의 진솔함, 서민적 면모에 끌렸다는 이들도 많았다. 강서구 화곡동에 사는 취업준비생 김진아(27)씨는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전략이 비겁해 보였다"며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 출신의 박 후보가 더 깨끗해 보였다"고 말했다.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김희수(23)씨도 "1억원 피부관리 논란이 있던 나 후보에 비해 박 후보가 서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건축사무소에 다니는 김초롱(26)씨는 "지하철로 출근하는 박 후보의 모습이 소탈해서 서민의 입장을 잘 이해할 것 같았다"며 "서민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등록금과 취업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현 정권에 대한 불만도 컸다. 연세대 경영학과 3학년 김원규(26)씨는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 중에는 그 친구 등록금과 생활비를 대주려고 부모님들이 작은 평수 집으로 옮긴 경우도 있고, 나 역시 등록금 생활비를 부모님께 받고 있어 미안한 마음 뿐"이라며 "야권에선 반값 등록금이나 20대를 위한 정책을 하려고 하는데 한나라당은 그런 데 소극적인 것 같았다"고 말했다.
20대의 롤모델로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복합기술대학원장의 영향도 있었다. 케이블방송국에 다니는 손미진(24)씨는 "청년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고민하는 안철수 원장이 박 후보를 지원한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미용사 김윤희(28)씨도 "젊은이들의 우상이자 멘토인 안철수 원장이 지원하는 순간 박 후보에게 더 신뢰가 갔다"고 밝혔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 전세값·교육비에 불안한 30대
"무상급식은 보편복지 시발점… 왜 포퓰리즘이냐"
"한나라당보다는 어려운 사람 사정 잘 알 것 같아"
경제난, 전세난, 높은 교육비 등으로 인해 불안정한 삶을 사는 30대의 불만은 박 후보에 대한 압도적 지지로 표출됐다. '부자들을 위한 정치를 한다'는 정부 여당에 대한 인식도 박 후보 지지의 주요 이유였다.
박 후보를 지지했다는 30대 부모들은 단계적 무상급식을 비롯한 한나라당의 복지정책에 비판적이었다. 초등학교 방과후학교 교사로 일하는 정현숙(37)씨는 "우리 아이도 곧 초등학생이 되기 때문에 평소 무상급식에 관심이 많았는데 오 전 시장 때는 전면적 무상급식이 실시되지 않았다. 박 후보의 공약 중 특히 복지 공약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한나라당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소득 차이 때문에 받을 마음의 상처는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동작구의 안마시술소에서 일하는 시각장애인 박의권(39)씨는 "개인적으로 무상급식은 보편적 복지의 시발점이라고 생각하는데 한나라당은 그저 포퓰리즘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며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기성정치가 추구하는 복지정책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박 후보는 정치를 하던 분이 아니라서 더 지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30대 역시 20대, 40대처럼 박 후보 당선 후 변화해나갈 서울시의 미래에 대한 기대로 그를 지지했다는 이들이 많았다. 회사원 노영수(31)씨는 "박 후보처럼 시민운동을 하며 어려운 사람들의 사정을 더 많이 들어 알고 있는 사람을 뽑아야 세상도 좋아질 것"이라며 "박 후보가 변화가 필요한 서울을 따뜻하고 사람 냄새 나는 곳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광운대 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박재형(39)씨는 "오세훈 시장 시절의 보여주기식 정책에 대한 실망도 투표에 큰 변수로 작용했다"며 "보여주기만 하는 정책이 아니라 실속 있는 정책을 펼치길 바라는 기대가 박 후보 지?이유였다"고 말했다.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안과의사 박상준(31)씨는 "한나라당은 이번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문제처럼 사익 추구에만 골몰하는 듯한 이미지가 강하다"며 "박 후보는 평생 낮은 곳의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삶을 살았다고 하니 서울시장 자리에 더 적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박재형씨는 "기득권 냄새 나는 나 후보보다 박 후보에게 동질감을 느꼈고, 서민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박 후보에 한 표를 던졌다"고 덧붙였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 먹고살기 팍팍한 40대
"체감경기 점점 나빠져 장사하기 너무 힘들어"
"민주주의 상당히 후퇴… 소통 리더십 회복 기대"
박 후보를 선택한 40대 역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팍팍한 현실을 극복해보기 위해 박 후보를 지지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장사를 하는 시민들은 갈수록 악화하는 체감경기에 진저리를 쳤다.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40대들의 이런 불만이 투표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강남구 개포동에서 옷가게를 하는 최정희(42)씨는 "건설업체를 운영하던 남편이 힘들어져 장사를 시작했는데 대통령은 경제가 성장한다지만 서민들의 피부에는 전혀 와 닿지 않아 너무 힘들다"며 "정치를 잘 모르지만 서민경제가 나아지지 않아 그에 대한 반발로 박 후보를 찍었다"고 토로했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주형기(42)씨도 마찬가지였다. 주씨는 "업계 사정이 갈수록 안 좋아지고 있는데 올해는 특히 심하다. 그런데도 정부 여당은 대책이 없었다. 정부 여당에 제대로 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고 밝혔다.
학창 시절인 1980, 90년대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으로 사는 40대의 반(反)한나라당 정서도 한몫 했다. 종로구 혜화동 부동산개발관리업체에서 근무하는 회사원 이광우(40)씨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 비교하면 이명박 정부는 민주주의가 상당히 후퇴했고 소통이 안 될 뿐 아니라 독단적이기까지 했다"며 "오세훈 전 시장도 마찬가지였는데 박 후보가 당선되면 소통하는 민주적인 리더십이 복원될 것으로 기대했다"고 말했다. 강북구 수유마을 작은도서관 이재권(49) 관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재래시장 활성화를 외쳤지만 암암리에 대형마트가 재래시장 상권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했다. 서민과의 소통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러나 박 후보는 다를 것이란 기대가 있다"고 밝혔다. 회사원 서모(41)씨는 "그 동안 서울시의 행정은 너무 전시적, 관료적으로만 이뤄졌는데 박 후보는 아름다운가게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했던 경험이 있으니 서울시 행정에 새 바람을 불어넣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40대도 20대, 30대와 마찬가지로 박 후보의 인간적 면모에 반했다는 반응이 많았다. 은평구에 거주하는 번역가 심언(44)씨는 "박 후보가 시민단체 활동을 해와 밑바닥 삶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우리 정치는 있는 사람이 아닌 서민이 중심이 돼 변화해야 하고 그런 점에서 박 후보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강남구 일원동에 사는 주부 김수남(41)씨는 "박 후보의 경력과 평소 소신 등을 볼 때 서민들을 가장 잘 이해하고 위해줄 것 같아 선택했다"고 말했다.
배성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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