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암이든 어느 정도는 유전된다. 가족 중에 걸린 사람이 있으면 없는 사람보다 걸릴 확률이 좀더 높아진다는 얘기다. 그 확률이 얼마나 높아질지, 어떤 유전자가 관여하는지 등의 유전성이 비교적 밝혀진 대표적인 암이 바로 대장암이다. 대장암 가족력이 있다고 부끄러워하거나 절망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미리 적극적으로 예방하려는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다.
이대목동병원이 병원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대장암 가계도'를 배포하기 시작했다. 직접 체크해보면 자신이 대장암에 걸릴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대장암 환자 20%는 유전 연관
대장암을 앓은 가족이 없는 사람이 평생 살아가는 동안 대장암에 걸릴 위험도는 2% 정도다. 대장 기능과 관련된 유전자들 중 일부가 자연스러운 노화과정 동안 돌연변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나이 자체가 대장암의 중요한 위험인자다. 가족력이 없고 건강한 사람이라도 50세부터는 대장암 검진을 받아야 하는 이유다.
여러 국제학술지에 실린 연구결과를 종합해보면 부모 중 1명이 대장암에 걸렸다면 위험도는 약 6%로 높아진다. 가족력 없는 사람의 3배다. 부모 중 1명과 형제자매 중 2명이 대장암이라면 위험도는 약 8%로 증가한다. 또 45세 미만에 대장암 진단을 받은 부모가 있다면 약 10%, 부모 둘 다 대장암에 걸렸다면 약 17%로 위험도가 올라간다.
이대목동병원 위암∙대장암협진센터 정성애 교수는 "부모나 형제 중 대장암 환자가 1명이라도 있으면 발병 확률은 2~3배, 2명이 있으면 4~6배가 되는 셈"이라며 "국내 대장암 환자의 15~20%는 가족력이 있어 유전적인 요인이 발암 과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전적인 요인이라는 건 암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부모에게서 물려받는다는 뜻이다. 대장암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유전자로는 APC가 있다. 돌연변이 APC 유전자를 물려받은 사람은 15~20세에 이미 장에 용종(덩어리처럼 조직이 비정상적으로 돌출된 형태)이 여러 개 생겨 있는 경우가 많다. 용종 중 일부가 커지거나 성질이 나빠지면 대장암으로 발전한다. 용종이 대장암으로 가는 데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10~15년으로 본다.
갖고 있는 대장암 유전자의 종류나 상태에 따라 대장 말고 다른 장기에도 암이 생길 위험이 높은 경우도 있다. 유방암과 난소암, 뇌종양 등이 대장암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방암 난소암 환자들이 수술하면서 장 검사를 꼭 거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유방암 역시 대장암처럼 유전성이 비교적 명확히 밝혀진 암이다. 가족 중 유방암 환자가 있으면 위험도가 높다는 말이다.
유전성 vs 산발성
유전으로 생기는(유전성) 대장암은 나이 들어 생기는(산발성) 대장암과 발병 시기나 위치, 증상 등이 다르다. 산발성 대장암은 50, 60대 이후에 많이 나타나는데 비해 유전성은 훨씬 이른 나이에 발병한다. 이르면 10~20대에도 생긴다. 정 교수는 "가족 중 대장암에 걸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대장암 진단을 받은 나이보다 10살쯤 먼저 정기검진을 시작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산발성 대장암은 대장 중에서도 항문에 가까운 쪽에 주로 생긴다. 특히 항문에서 안쪽으로 약 15cm까지의 직장이나 그 바로 위쪽 구불결장에서 발병하는 경우가 산발성 대장암의 절반 이상이다. 반면 유전성 대장암은 훨씬 안으로 들어가 소장 연결 부위와 가까운 쪽에서 대부분 시작된다. 이 같은 발병 위치에 따라 좌측대장암, 우측대장암이라고도 불린다.
발병 부위가 항문에 가까울수록 증상이 분명하다. 대변 볼 때 아프거나 피가 섞여 나오기도 한다. 변비나 설사도 함께 생긴다. 반대로 항문에서 멀수록 증상이 애매하다. 배에 가스가 차는 듯 팽팽해지고 기운이 없어지고 소화가 잘 안 된다. 일반적인 배탈과 별로 다르지 않아 구분이 어렵다. 그래서 유전성 대장암은 일찍 발견하기가 더욱 쉽지 않다.
고지방 저식이섬유 식단 위험
이대목동병원을 비롯한 국내 여러 병원에선 대장암 가족력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체계적인 검진이나 진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원하면 유전자 검사도 가능하다. 대장암 가족력이 있는 사람이 예방을 위해 정기검진 말고 무엇보다 신경 써야 할 건 식습관이다. 지방이 많고 식이섬유가 적은 식단을 피해야 한다.
고지방 식품을 먹으면 지방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독성물질이 장을 계속해서 자극하며 유전자 돌연변이를 유발할 수 있다. 또 식이섬유가 적은 음식을 먹으면 대변 양은 줄고 대변이 장에 머무는 시간은 길어진다. 그만큼 장 안에 남는 독성물질의 농도가 높아지게 된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 대장내시경이 정 불편하면 혈변검사라도 받아봐야
대장암을 가려내는 가장 정확한 검사법은 내시경이다. 하지만 대장내시경은 검사 전 다량의 물이나 장세척약을 마셔야 해서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한다. 전문가들은 정 불편하면 분변잠혈반응검사라도 먼저 해보길 권한다.
분변잠혈반응검사는 말 그대로 대변 속에 숨어있는 피 성분을 확인하는 검사다. 콩알 정도 크기만큼 떼어낸 대변에 특수시약을 처리해 색깔 변화로 혈액이 섞여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50세 이상 성인이 대상인 무료 국가암검진 항목에도 이 검사가 포함돼 있다.
대장항문전문병원 양병원은 2009년 1월부터 2년 동안 건강검진센터에 내원해 분변잠혈반응검사를 받은 50세 이상 성인 1만3,633명 중 약 20%인 2,666명이 양성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또 그 가운데 1,613명을 대장내시경 검사했더니 3%에 해당하는 49명이 대장암으로 나왔다.
사실 분변잠혈반응검사는 진짜 대장암 환자를 가려내는 민감도가 그리 높지 않아 무시하고 거르는 사람들이 많다. 검사 결과 양성 중 통상 3~5%가 암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양병원 양형규 원장은 "양성의 약 35% 정도가 대장에 용종을 갖고 있다"며 "대장암의 약 95%는 용종이 발전해 암이 된 경우"라고 말했다. 양성이 나오면 다시 대장내시경으로 용종을 찾아 제거해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미리 차단할 수 있다는 소리다.
양 원장은 또 "분변잠혈반응검사 결과가 양성이면 대장내시경뿐 아니라 위내시경도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변에 섞인 피가 대장 말고 다른 소화기에서 나온 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위암이나 위궤양 환자에서도 혈변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40~50세부터는 음성으로 나와도 정기적인 대장내시경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대장암은 조기에 발견하면 90% 이상 완치된다. 그러나 3기까지 진행되면 수술과 항암제 치료를 병행해도 5년 생존율이 70%까지 떨어진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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