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급 시각장애인 이모(40ㆍ여)씨는 26일 오전 서울시장 보궐선거 투표를 하러 노원구 신상계초등학교 투표소에 갔다가 그냥 발길을 돌렸다. 비장애인용 투표 안내문에는 유권자가 가야 할 투표소가 지도와 함께 안내돼 있지만, 시각장애인용 점자 안내문에는 투표소 정보가 전혀 없이 “투표 장소는 주소지 동사무소에 문의하라”고만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노원구 선관위에 전화로 문의, 상계초교라고 안내를 받았지만, 잘못된 안내였고 결국 다른 투표소에 가서야 투표를 할 수 있었다. 이씨는 “비장애인보다 더 배려가 필요한 장애인용 투표 안내문에 가장 중요한 투표소 정보조차 없어 일일이 전화를 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투표소에 가도 문제다. 공직선거법(제157조)은 장애인은 가족 등 보조인과 함께 기표소 안에 들어가 기표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법규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현장 투표소 관리자들이 가로막는 일이 발생했다. 손 떨림이 심한 1급 지체장애인 박창우(43)씨는 제기동 투표소에서 보조인의 동행을 제지 당해 혼자 기표를 하다가 선에 도장을 찍어 결국 무효표가 되고 말았다.
더욱이 시각장애인용 투표 용지는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후보자의 이름이 점자로 찍혀있는 보조용구에 일반 투표 용지를 끼운 후 도장 찍는 곳을 손으로 더듬어 기표를 해야 한다. 1급 시각장애인 이승철(40)씨는 “혹시 도장이 잘못 찍혀 무효표가 된 건 아닌지 내내 걱정이 됐다”고 토로했다.
장애인들의 이 같은 불편에 대해 선관위는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선관위 관계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별도 점자 안내문을 만들려면 예산이 많이 들고, 선거기간(14일) 동안 만들기에 시간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전자투표기 도입. 키패드 방식에 음성 안내가 되는 전자투표기 라면 혼자 기표할 수 있고 점자를 모르는 시각 장애인도 투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선관위가 정당과 협의를 해야 전자투표를 시행할 수 있지만 아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도 여전하다. 홍현근 한국지체장애인협회 편의시설팀장은 “지하나 지상2층 이상에 투표소가 있으면 지체 장애인들은 투표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선거가 있을 때마다 매번 중앙선관위에 시정을 요청했지만 올해도 2층 이상에 투표소가 설치된 곳이 많았다”고 말했다. 지하나 지상2층 이상에 위치한 투표소는 서울 전체(2,206곳)의 30%가 넘었다.(660여곳)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장애인들의 참정권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은심(54) 서울시각장애인복지관 점역출판팀장은 “시각장애인뿐 아니라 장애인들은 선거 때마다 불편을 겪는다”며 “시간이나 예산을 탓하기 앞서 장애인이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정부가 최대한 배려하는 게 진정한 민주사회가 아니냐”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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