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인 고령화에 대비하겠다며 의욕적으로 선보인 '100세 사회' 준비 사업들이 허점투성이인 것으로 드러났다. 부처 간 중복사업이 많은 데다 100세 사회 준비와는 무관한 사업들을 끼워 맞추기 식으로 집어넣은 경우도 많았다. 이에 따라 다음달 2일부터 시작되는 국회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기획재정부가 최근 발표한 '100세 사회 준비 주요 사업의 2012년 예산안'을 한국일보가 26일 분석한 결과, 고령층 일자리 창출의 경우 관련 부처 간 과열 경쟁으로 중복 사업이 많았다. 보건복지부의 시니어인턴십 프로그램, 고용노동부의 50세 이상 새 일터 적응 지원, 중소기업청의 시니어 재취업 지원 등은 이름만 다를 뿐 내용은 동일했다. 이들 사업에 투입될 내년 예산은 각각 63억9,000만원, 20억원, 6억원 등 총 90억원 규모. 비슷비슷한 내용의 중복 사업인데도 관련 예산이 올해보다 3분의 1가량(30억원) 늘었다.
고령자 창업을 돕는다는 측면에서 복지부의 고령자 친화형 전문기업 육성과 중소기업청의 시니어 맞춤형 창업기반 구축 사업은 닮은 꼴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그러니 "부처간 중복으로 사업 효과가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00세 사회와 무관한 사업들도 '100세 사회 예산안'에 이름을 올렸다. 복지부가 주관하는 대한민국 사회봉사단 코리아 핸즈(Korea Hands) 예산은 대부분 사회봉사 참가 청년들의 급여이고, 고령자 지출은 3억5,000만원에 불과하다. 여성가족부의 가족친화문화 조성은 기업들이 직원들의 출산과 양육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지원하는지 평가하는 사업으로, 100세 사회와는 직접적인 관련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소모품인 전자다트, 요가매트, 배드민턴 채 등을 지원하는 사업에 대해선 선심성 행정의 표본이라는 비판이 무성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전국 경로당 1만 곳에 한두 종류의 운동용품을 지원하는 노인시설 체육용품 지원사업에 57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이처럼 100세 사회 준비 정책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는 이유는 관련 사업을 배분하고 타당성을 평가할 컨트롤 타워가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복지부 산하 저출산ㆍ고령사회위원회가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데, 힘 없는 복지부 소속이라 부처 간 조율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한경혜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 교수는 "100세 사회를 준비하는 작업은 향후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는 중대 사안인 만큼 종합적인 컨트롤타워를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며 "다만, 옥상옥이 되거나 정치적 풍향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전문가들 위주로 구성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예산 낭비나 포퓰리즘에 흔들리지 않도록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전담기구를 창설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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