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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의 날 맞아 국민훈장 목련장 받은 황순자씨/ "20년간 조금씩 모은 돈으로 암 걸린 아들 살려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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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의 날 맞아 국민훈장 목련장 받은 황순자씨/ "20년간 조금씩 모은 돈으로 암 걸린 아들 살려냈죠"

입력
2011.10.25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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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 말처럼 쉽지 않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세상에서 악착스레 푼돈을 모은다는 건 어리석은 짓처럼 보인다. 오죽하면 "숨만 쉬고 돈을 모으면"이란 개그 유행어가 공감을 얻을까.

25일 '어리석은 자'들이 저축의날(26일)을 맞아 '저축 왕'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모였다. 매일 푼푼이 한 저금으로 간난신고를 헤치고, 습관처럼 통장을 10개 이상 가지고 있다는 그들의 미소엔 남모를 삶의 지혜가 스며있었다.

최고 영예인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은 황순자(63)씨는 기념식이 끝나기 무섭게 삶의 터전인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으로 달려갔다. 35년간 한번도 거르지 않은 장사, 이날이라고 다를 게 없다. 상추며 오이며 좌판 가득 놓인 채소를 파느라 인터뷰는 안중에도 없고 "벌고 남은 거 조금 (저축)했다. 쪽 팔린다(창피하다)"고 손사래만 쳤다.

황씨는 매일 오전 9시부터 밤 8시까지 서서 일한다. 삭신이 쑤실 법도 한데 손님과의 흥정이 신나고, 동료 상인들과 나누는 정이 담뿍하다. 일주일벌이를 신용협동조합에 차곡차곡 맡기는 재미도 쏠쏠했다.

홀로 키운 아들(23)이 4년 전 암에 걸려 억장이 무너질 때도 웃었다. 20년 전 은행 입금 몇 만원으로 시작했던 저금이 수술비가 돼 아들을 살리고, 변변한 뒷바라지도 못했는데 이제 어엿한 사회인(사회복지사)으로 자라나게 했으니 뿌듯할 따름이다. 황씨는 이날 "고맙습니다"는 아들의 한마디가 가장 살가웠다고 했다.

작은 아파트 장만할 요량으로 시작한 저축이지만 5년 전부터는 씀씀이가 늘어버렸다. TV에서 굶주린 아프리카 아이들을 보고 관련 단체에 후원금을 내는 바람에. "많이는 못한다"면서 매달 정기적으로 20만원, 벌이가 좋으면 더 내기도 한단다. 그는 현재 동대문구 용두동의 40㎡(13평) 겨우 되는 전세에 살고 있다.

저축과 나눔 덕에 훈장을 탔건만 그는 심드렁하다. "숨어서 봉사하는 사람도 많아요. 습관적으로 저축한 거지. 자격도 없는데, 남세스러워." 손님에게 채소 상태를 한참 설명하더니 한마디 보탰다. "저 같은 사람도 하는데, 저축 어렵지 않아요. 형편 닿는 대로 하면 돼."

대통령표창을 받은 강한념(63)씨의 삶의 궤적도 비슷하다. 남편 사업 실패로 새벽시장에서 장사를 해 번 돈을 저축해 자동차부품정비업체를 꾸렸고, 간암에 걸린 남편을 10년 넘게 보살폈다. 직원들에겐 급료 중 일부는 무조건 저금하라고 '강요'하기도 한단다.

이날 연예인 저축 왕들도 눈에 띄었다. 가수 겸 배우인 이승기는 봉사 및 기부활동과 검소한 생활을 인정 받아 대통령표창, 배우 하지원은 장기기증 신청 등 사회공헌 활동 덕에 국무총리표창을 받았다.

이들은 평범하지만 실천은 어려운 재테크 비결로 관심을 모았다. 이승기는 "부모가 은행원 출신이라 돈을 허투루 쓰지 않도록 관리해준다. 통장이 10개, 연금도 넣고 있다"고 했다. 그의 부모는 모두 국민은행(옛 주택은행) 은행원이었고, 현재 은퇴했다.

뒤질세라 하지원도 "부모가 따로 저축하는 통장을 만들어 줘 통장이 10개가 넘고 펀드나 보험, 저축을 가장 많이 한다"고 말했다. 부모의 가정교육과 저축하는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일깨우는 대목이다.

정부는 이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48회 저축의날 기념식을 열고, 훈장 1명, 포장 2명, 대통령표창 5명, 국무총리표창 9명 등 총 73명을 저축유공자로 시상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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