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시에 사는 주부 최모(58)씨는 최근 남편(61)으로부터 "연금보험 하나 안 들어놓고 뭐하고 있었냐"는 핀잔을 듣고 가슴에 못이 박혔다. 최씨는 "20년 전쯤 생명보험을 들었다고 하자 남편이 '나보고 일찍 죽으라는 거냐'며 화를 내 해지한 후 보험상품은 쳐다보지도 않았다"며 "남편이 퇴직한 후 국민연금 만으로는 살기에 빠듯해 집이라도 팔아서 노후 생활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형병원 간호사인 강모(32)씨는 올 초 보험사를 통해 매달 30만원씩 불입하는 연금보험에 가입했다. 전세자금 대출 갚느라 생활비도 팍팍한 처지지만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강씨는 "65세 이후 받게 될 국민연금과 합하면 매달 200만원 이상 고정수입이 보장돼 풍족하지는 않지만 남편과 부족하지 않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보험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 보험은 가장이 사망했을 경우 남은 가족을 위한 '유산'의 성격이 강했다면, 지금은 노후 보장을 위한 '필수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의료발달과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로 평균 수명이 길어진 데 따른 현상이다. 이에 따라 생명보험사들은 물론 손해보험사들까지 '100세 보험'이라는 이름의 상품을 경쟁하듯 내놓으며, 은퇴 이후 자산관리를 위한 컨설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00세 시대 대비 보험이 주류
민규영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연구원은 "100세 시대가 점점 눈앞으로 다가오면 보험업계에 근본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며 "예를 들어 2008년 9월 이후부터 생명보험ㆍ손해보험의 구분 없이 의료비 실손보장 상품은 모두 100세 보장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생명보험사 연금보험의 경우 과거 보험료에 따라 보증기간을 각각 10년 15년 20년씩 구분해 보장했지만, 최근에는 보증기간을 아예 100세로 못박은 상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100세 시대의 도래는 새로운 기회이자 힘겨운 도전이다. 우리나라 공식 은퇴시기는 60세 전후. 은퇴 이후에도 4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셈이다. 게다가 실제로는 55세 전후 퇴직자가 많은 만큼 은퇴 후 수명이 인생의 절반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이다.
은퇴시장 놓고 금융권 치열한 경쟁
보험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을 기준으로 연금 수령자들이 국민연금ㆍ퇴직연금 등 연금에 의해 실현할 수 있는 실질 소득대체율은 평균 45.2%에 불과했다. 은퇴 전에 월 100만원을 벌었던 사람이 퇴직 후 연금으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이 45만2,000원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이는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가 권고하는 70%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때문에 "준비되지 못한 100세 인생은 축복이 아닌 재앙"이라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는 곧 은퇴 후 경제적 어려움과 나이가 들면서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의료비 등을 감당하기 위해서 국민연금과 퇴직금 이외에 개인적으로 미리미리 노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개인연금, 퇴직연금 시장을 놓고 금융계 전반이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은퇴연구소는 2020년 은퇴시장 규모는 680조원(개인연금 500조원, 퇴직연금 180조원)으로 2010년 기준 200조원에 비해 3.4배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시장을 두고 각각 안정된 이자와 높은 수익율을 무기로 은행과 증권사도 앞다퉈 뛰어드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보험업계에서는 물가상승분을 반영한 변액연금 등 장기상품에 특화된 보험사의 강점을 살린 다양한 상품을 개발해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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