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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詩로 여는 아침] 아라베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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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詩로 여는 아침] 아라베스크

입력
2011.10.2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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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례

그는 내 이름을 끊으려 했다고 끊겠다고 했어요

그가 공사장에서 콘크리트 바닥을 해머로 내리치는 걸 봤어요 드릴로 구멍을 파고 불칼로 쇠를 잘랐어요 그는 느닷없이 소리를 지르고 쌍욕을 해댔어요

그러다가도 날아가던 작은 새를 보고 그것은 참새가 아니라 방울새라고 했어요

나는 그게 방울새인 줄 처음 알았어요

● 아라베스크는 덩굴무늬와 추상적인 곡선으로 만들어진 아라비아 풍의 무늬를 뜻합니다. 언젠가 폭격으로 이슬람 사원이 무너지는 통에 부서진 채 앞마당을 뒹구는 부드러운 곡선의 돌 조각들을 보았어요. 어떤 이들은 '아라베스크'하면 발레 동작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한쪽 다리로 서서 균형을 잡고 다른 발을 길게 뻗어 가장 아름다운 사선을 만드는 거래요. 아라베스크 라인을 보면 그 무용수의 연륜을 감지할 수 있을 만큼 기본적이고 중요한 동작이라고도 합니다.

단단한 사물을 때려 부수고 금속을 절단하며 쌍욕을 해대는 거친 존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멀리서도 참새와 방울새를 구분할 줄 아는 섬세함을 가졌어요. 난폭함과 섬세함 그 두 발로 걸어가는 그의 이름이 바로 인간입니다. 아라베스크 아라베스크. 시인은 주문처럼 그 우아한 이름을 되뇌며 간절히 소망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기쁨의 한쪽 다리로 단단히 서서 폭력과 슬픔으로 빚은 다른 쪽 다리를 지상에서 멀리 들어올리는 나날이 있을 거라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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