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산 0.1%면 9개大 반값 등록금 가능… 정부 의지가 관건
부산 출신의 A(28)씨는 2004년 부산대에 입학했다 1년 만에 그만두고 숙명여대로 편입했다. A씨가 부산대에 냈던 등록금은 학기당 160만원 안팎, 숙대는 300만원을 조금 웃도는 수준. 하숙집 월세, 생활비, 학원비까지 A씨는 6년간 유학비용으로만 쓴 돈이 1억이 넘는다. 하지만 아직까지 취업을 못한 터라 A씨는 부모님 볼 면목이 없다고 했다. A씨는 "서울로 와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함에 그 큰 돈을 썼는데 취업도 안되고 매달 생활비만 축내고 있다"고 털어놨다. A씨처럼 울며겨자먹기로 고액의 서울유학을 감행하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 등록금이 절대적으로 싼 양질의 고등교육기관이 지역에 있었다면 굳이 소요되지 않았을 비용이다.
국고 줄자 학생에게 부담 전가
과거 사립대의 절반 이하였던 국립대 등록금은 가난했지만 공부 잘 하던 수재들을 국립대로 불러모을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이었다. 지금도 국립대의 평균 등록금은 연간 443만원(2010년 기준)으로 사립대 768만원보다는 싸지만 굳이 지방 국립대를 선택할 만큼 매력적인 수준은 한참 넘어섰다.
2001년과 비교하면 국립대 등록금은 202만원, 사립대는 289만원 늘어난 것으로 상승폭은 국립대(82.7%)가 사립대(57.1%)보다 높고 물가인상률(31.5%)보다 월등히 높다. 이처럼 국립대 등록금이 급등한 이유는 2002년 국립대 등록금 자율화 이후 대학들이 학교 자율로 편성할 수 있는 기성회비를 대폭 인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른 기성회비는 교직원 인건비로 쓰인다. 한국일보가 올해 강원대 경북대 경상대 부산대 전남대 전북대 충남대 충북대 등 거점국립대 8곳의 기성회계 세출예산을 분석한 결과 기성회계 평균총액 1,042억원 중 인건비가 362억원으로 가장 높았다. 많은 국립대들이 "사립대 수준으로 급여를 맞춰야 우수한 교수를 유치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는데 국가재정으로 인건비를 확충하지 못하자 결과적으로 학생들에게 떠넘긴 꼴이 됐다.
교과부 관계자는 "부족한 국립대 예산을 보완하고자 1963년에 도입한 기성회비가 국립대 등록금 인상을 이끌고 있다"며 "국가재정이 줄어든 게 일차적인 문제고 다음으로 국립대가 사립대와 경쟁에 뒤지지 않으려고 학생들에게 등록금 부담을 전가시킨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반값 또는 무상 획기적 지원 필요
국립대마저 등록금 올리기 전쟁에 가세하면서 대한민국 전체의 대학 등록금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폭주했다. 하지만 정부가 거점 국립대의 등록금을 반값으로 낮추거나 전액무상으로 지원해주는 획기적인 지원책을 실행한다면 지역의 우수 인재를 흡수하는 것은 물론, 사립대의 공고한 등록금 담합구조를 깨트리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하고 있다.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은 "국립대가 지금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등록금을 책정한다면 다른 대학의 등록금상승을 막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도 "(전국의 모든 대학에) 장학금 형식으로 정부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사립대의 고액 등록금 구조만 공고히 할 뿐 근본적인 등록금 해법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반값등록금에 국고 4,105억원 필요
그렇다면 국립대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해 필요한 재원은 얼마나 될까. 강원대 경북대 경상대 부산대 전남대 전북대 제주대 충남대 충북대 등 9곳의 지난해 등록금 수입은 총 8,210억원이었다. 그 중 절반을 지원한다면 4,105억원이 필요하다. 올해 정부예산 규모 309조원의 채 0.1%가 안 된다.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등록금 완화정책 재원 1조 5,000억원은 9개 거점 국립대의 등록금을 전액 지원하고도 남는 액수다. 대다수 학생들에게 등록금 5%, 10%를 깎아주는 것보다 거점 국립대에 파격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정부 예산도 덜 들고 사회 전반에 선순환을 이끌어낼 수 있는 셈이다.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 정도 예산은 조세 및 재정구조개혁으로 정부의 충분한 정책적 의지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또 "값싼 등록금에 국립대의 위상이 예전만큼 회복된다면 자연히 우수학생들이 거점 국립대로 몰릴 것이고, 위기의식을 느낀 사립대도 살아남기 위해 등록금 가격을 낮춰 자연스레 대학 등록금 수준이 내려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김혜영기자 shine@hk.co,kr
■ 국립대에 인재 유치, 등록금 지원만으론 부족
지난해 한양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한 박모(27)씨. 그는 3년 전 대학재학 중 내린 판단이 현재의 취업에 결정적으로 중요했다고 믿는다. 당시 지방의 한 거점 국립대 컴퓨터공학과를 다니던 박씨는 고향을 떠나 한양대에 편입했다. 한양대의 한 학기 등록금은 450만원으로, 다니던 국립대(200만원)보다 두 배 이상 비쌌고, 서울에서의 생활비도 만만치 않았지만 졸업 이후 상황은 박씨의 예상대로였다. 박씨는 "한양대에서 같이 졸업한 친구들은 10명 중 9명이 대기업을 골라 입사할 정도였지만 지방 국립대 친구들은 절반 이상이 아직도 취업을 못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다니던 지방대도 교육 여건은 크게 뒤떨어진 편은 아니었다. 결국 학교 이름이 중요했던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지방 거점 국립대를 살리는 데에는 파격적인 등록금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취업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물론 값싼 등록금으로 우수 인재가 지방 국립대에 몰리면 자연스럽게 취업률이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취업문턱이 높은 지방대를 위해 제도적으로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이병운 부산대 교수는 "지방 국립대 졸업생에 대해 공기업과 공공기관이 지역별 채용 쿼터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만 이런 취업 혜택은 사립대 졸업생들로부터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에 '취업 혜택→우수 인재 유치→국립대 졸업생 경쟁력 확보'로 이어지는 선순환구조가 정착될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실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지방 국립대의 전성기로 일컬어지는 70~80년대는 부산대(기계), 경북대(전자), 전남대(화학공학), 전북대(금속), 충남대(공업교육) 등 지역 기반 산업과 연계한 정부 차원의 공대 육성책이 있어 국립대 졸업생의 취업이 사실상 보장됐다. 또한 졸업과 동시에 의무적으로 교사 발령을 받을 수 있던 지방 국립대 사범대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이런 점이 국립대 선택의 큰 이유였으나 지금은 이러한 강점이 모두 사라졌다.
한국일보가 지방 고교생 1,38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가산점 등 취업 혜택이 주어질 경우 지방 국립대에 진학할 의사가 있다는 응답이 90.3%로 무상교육을 할 경우 진학하겠다는 응답(89.2%)보다 많았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지방 국립대에 대한 반값 등록금 또는 무상교육 등 지원 방향은 옳지만 고용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수 있다"며 "지방의 고용 창줄 문제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