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기억' 속의 오빠들이 돌아온다. 대형 기획사에서 쏟아진 아이돌 그룹이 엔터테인먼트 판을 점령하기 이전 가요계를 풍미한 '왕들의 귀환'이다. 'X세대'의 감성을 촉촉히 적셔주던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터보 등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인기를 구가하던 스타들이 그 주인공. '나는 가수다'로 촉발된 90년대 노래 붐은 X세대가 열광하던 그 시절 인기 가수들을 다시 브라운관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13일 첫 방송을 내보낸 엠넷 '문나이트90'은 90년대 댄스가수 1세대들의 이야기를 재연을 통해 다룬 다큐드라마다. 당시 이태원 클럽 '문나이트'에서 활동한 가수들을 중심으로 가요계 계보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으로, 한국 힙합의 전설 현진영과 클론을 집중 조명했다. 슈퍼주니어의 신동이 현진영으로, 엠블랙이 클론으로 변신했다. 아이돌 가수들이 선배들의 데뷔 전부터 최고 전성기까지의 모습을 연기하며 90년대 가요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90년대는 가요계 전성기이자 문화소비 호황기였다. 90년 초반에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이었던 이들을 일컫는 X세대는 기성세대와 전혀 다른 별종으로, 신세대라는 말로도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분방한 문화감성을 지녔다. 워크맨을 늘 귀에 꽂고 다녔던 이들이 주도한 가요계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김건모의 앨범은 200만장쯤은 우습게 팔려 나갔다.
11월 16일 첫 방송을 앞둔 SBS플러스의 '컴백쇼 톱10'은 X세대 가수들을 본격적으로 불러들이는 무대다. '90년대 감성을 21세기의 퍼포먼스와 테크닉으로 녹여내는 음악쇼'를 모토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 김종국과 함께 터보로 인기를 끌었던 김종남이 다시 무대에서 춤과 노래를 선보인다. Ref, 구피 등도 출연할 예정이다. '컴백쇼 톱10'의 김경남 PD는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90년대 가수들을 재조명할 것"이라며 "'나는 가수다'가 오디오형이라면 '컴백쇼'는 비디오형 가수들의 퍼포먼스로 볼거리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노는 "갈구하던 무대에 서게 돼 기쁘다"며 "예전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가수들이 다시 잘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기대를 보였다. 이 프로그램은 90년대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로 이름을 날린 이본이 13년 만에 컴백해 박명수와 함께 MC를 맡았다.
엠넷의 인기 프로그램 '비틀즈 코드'에도 이주노, 룰라, Ref, 소방차, 토이 같은 90년대 스타들이 잇따라 얼굴을 비추고 있다. 케이블 쪽이 90년대 향수 불러일으키기에 발 빠르게 나선 가운데 SBS '강심장'에 디바의 멤버 비키와 지니가 나와 활동 당시 비화를 전하는 등 지상파에도 X세대 스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동안 가요계에서 7080과 짝패를 이뤘던 '복고'라는 말이 이제 90년대까지 자연스럽게 아우르게 된 것이다. 7080 음악이 재조명 바람을 타고 자리를 굳힌 것처럼 90년대 음악과 가수들 역시 옛 영광을 찾을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대중음악 평론가 김작가는 "90년대 당시 음악시장 주류 소비자였던 현재 30대가 새로운 음악보다는 청소년 시절 들었던 익숙한 음악과 가수를 다시 찾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신승훈 유희열처럼 현재 활동하는 90년대 가수들도 있는 만큼 한동안 활동하지 않았던 발라드 가수나 댄스 가수에 포커스가 맞춰질 것"이라며 "붐까지는 가지 못하고 7080이 차지한 위상 정도에 머물 것"이라고 내다봤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