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에서 전 세계로 번지고 있는 '월가점령' 시위의 '배후'는 누구일까. 온라인에서 이 운동을 처음 제안한 캐나다의 반소비주의 잡지 '애드버스터'를 우선 꼽을 수 있겠지만, 영화감독 찰스 퍼거슨의 이름도 앞줄에 넣어야 할 것 같다. 매사추세츠공대(MIT) 정치학박사 출신의 늦깎이 감독 퍼거슨은 올해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인사이드잡(Inside Job)'을 통해 '99%를 절망에 빠뜨린 1%의 탐욕'을 통렬하게 고발했다.
양심적 부자들의 목소리 없는 나라
'본' 시리즈로 유명한 배우 맷 데이먼이 매력적인 내레이션으로 끌고 가는 이 영화는 글로벌금융위기를 일으킨 '범죄자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떼돈을 벌기 위해 고객에게 사기까지 친 금융회사들, 쓰레기 같은 채권에 최우량등급인 트리플에이(AAA)를 버젓이 매겨준 신용평가회사들, 월가의 로비를 받고 금융규제를 마구 풀어준 정치권과 정부인사들, 자리와 돈을 대가로 왜곡된 보고서와 정책조언을 남발한 경제학자들. 영화는 수많은 중산층과 서민들이 집을 뺏기고, 실직하고, 빈곤층으로 전락하도록 만든 이들이 그 후 어떻게 됐는지를 보여준다. 놀랍게도 이들 대부분이 여전히, 멀쩡하게, 잘 나가고 있다. 구제금융으로 살아난 금융사의 경영진은 다시 보너스 잔치를 벌이고, 신용평가사들은 교묘한 논리로 책임을 피했다. 과감한 개혁의 기대 속에 오바마 정부가 들어섰지만, 월가와 한통속인 인물들을 재무장관, 중앙은행장, 수석경제자문위원 등에 기용하면서 발목이 잡혀버렸다. 정의는 사라지고, 나아질 희망도 없다는 것을 안 '99%'의 가슴에 분노가 솟구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면 거리로 나온 시위대에 대한 '1%'의 반응은 어떨까. 워런 버핏과 조지 소로스 등은 금융거래로 거대한 재산을 모았지만 "1%의 탐욕을 규제해야 한다"고 적극 동조한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대로 놔두면 공멸한다"는 게 요지다. 특히 버핏은 자기 같은 수퍼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 빈곤층의 복지를 늘려야 미국이 산다고 주장했다. 반면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 같은 '개념상실' 부자들도 많다. 머독은 자기 소유의 극우방송 '폭스뉴스'와 월가편향 신문 '월스트리트저널' 등을 통해 시위대를 공격했다. 시위대는 그를 '월가 5적' 의 하나로 꼽고, 그의 호화아파트가 있는 맨해튼 부촌에 몰려가 비난행진을 벌였다.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의 맹활약 속에 국내에도 '서울점령' 시위가 등장했다. 그러나 사실 '한국의 99%'는 반값등록금 촛불시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철회 희망버스 등을 통해 진작부터 움직이고 있었다. 서울점령 현장에선 한미자유무역협정 반대, 의료민영화 저지 등 중구난방의 구호들이 나왔지만, 따져보면 '자본과 권력을 쥔 1%의 무한 탐욕에 대한 저항'이란 공통분모가 있다. 그런데 미국과 다른 점은 '각성하고 책임지자'는 양심적 부자들의 목소리가 우리나라에선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99%와 공감할 줄 아는 1% 나와야
국내 부자들 중엔 연간 1억 원을 피부관리에 쓰는 이들도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런 클리닉에 다닌다는 집권당 서울시장후보는, 월 5만원이 없어 점심을 굶거나 눈칫밥을 먹는 아이들에게 가난의 낙인을 찍지 말고 밥 좀 편히 먹이자는 정책을 '나라 망칠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했다. '99%와의 공감'이 바닥수준이다. 사상 최대이익을 낸 자동차회사가 사내하청으로 인건비를 아끼려 법원의 정규직 채용 명령을 무시하는 등 재벌들의 탐욕도 도를 넘었다.
월가점령 시위가 아직은 폭발력이 없어 보이지만 '분노한 다수'가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재 정권을 줄줄이 무너뜨린 '재스민 혁명'도 처음부터 잘 조직된 운동은 아니었다. 마을 전체가 불길에 휩싸이면 부잣집도 홀로 안전하긴 어려울 것이다. 버핏의 길인가, 머독의 길인가. '대한민국 1%'의 지혜로운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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