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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3류 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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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3류 선거다'

입력
2011.10.24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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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선거에 나선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와 무소속 박원순 후보의 삶의 궤적은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두 후보 모두 상당수의 유권자들에게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나 후보는 줄곧 최우수 학업 성적을 거두고 서울대 법대를 나와 판사를 거친 엘리트 정치인이다. 박 후보는 유신 반대 시위로 옥고를 치르는 곡절 끝에 변호사가 된 뒤 시민단체 활동을 해온 소신파 정치인이다.

정당의 에이스와 시민단체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의 대결이란 점에서 이번만큼은 새로운 선거문화를 보여줄 것이란 기대가 컸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이번처럼 혼탁한 선거도 없었다. 비방과 폭로 공세로 얼룩지다 못해 대선주자까지 나선 '대리 선거'로 변질됐다.

먼저 의혹 검증이란 간판 아래 진행되는 네거티브 공방이 가관이었다. 양측에서는 나 후보의 고액 피부 클리닉 출입 의혹과 박 후보의 병역 특혜를 위한 양손 입양 논란을 주된 표적으로 삼았다. 나 후보의 다이아 반지 가격 축소 신고와 박 후보의 '서울대 법대 제적'이란 학력 허위 기재에 대한 의혹도 한참이나 도마에 올랐다. 부동산 투기 의혹과 대기업 모금 논란 등도 벌어졌다.

이런 공방에 시민들도 양 쪽으로 편이 갈려 상대 후보를 손가락질하는 데에만 열을 올렸다. 되돌아 생각해 보니 양측의 네거티브 공방에 정신이 팔려 두 후보의 국가관이나 도덕성, 정책 능력 검증은 아예 시도해보지도 못한 것 같다.

이러다 보니 서울시 정책을 둘러싼 대결은 실종됐다. 청계천 공사나 한강 개발 같은 굵직한 시정 계획에 대한 찬반 토론은 아예 자취를 감췄다. 나 후보가 공약으로 뭘 내세웠는지, 박 후보가 어떤 약속을 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 후보와 박 후보는 각각 총론적으로 '정직한 변화'와'새로운 서울'을 앞세워 서울시의 '천지개벽'을 선언했다. 나 후보는 전시성 사업 재검토 입장을 밝혔고, 박 후보는 토목 중심 사업을 사람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서울시를 확 뜯어고치겠다고 하니 말만 들어도 속이 다 시원하다. 그런데 좀 의아한 점이 있다. 서울시의 어느 부분이 잘못됐고, 그래서 뭘 어떻게 바꾸겠다는 설명은 없다. 설마 청계천이 이전의 3∙1고가도로가 놓여진 채로 있는 게 더 나을 뻔 했다는 건 아닐 것인데도 말이다. 도대체 뭐가 생활 중심이나 사람 중심이 아니었는지에 대한 지적이 빠져 있다. 그저 바꾸겠다는 말뿐이니 공허하다 못해 비루하다.

서울시에도 고시 출신을 비롯한 우수한 공무원들이 모여 있다. 이들도 두 후보 못지않은 애국심 속에 성실히 일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과 토론 한 번 제대로 하지 않고 시정의 총체적 개혁을 언급하고 있으니 그건 모독이 아니면 무지의 소산이다.

여기에 대선주자들도 전면에 나섰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서울을 돌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도 박 후보 지지를 선언하면서 거들고 나섰다. 이젠 '나경원 대 박원순'선거도 아닌 것이 됐다.

가장 우수한 사람들이 나섰다는 이번 선거가 가장 추악한 선거로 기록될 전망이다. 벌써 선관위는 네거티브 선거전이 도를 넘었다고 보고 양측에 자제를 촉구하는 경고 서한을 보냈다. 22년 만의 일이라고 한다.

나 후보가 그리던, 박 후보가 꿈꾸던 서울시가 진흙탕에 빠져서 보이지 않는다. 두 후보가 내세우던 서울시의 미래도 잊혀지고 있다. '최선도, 차선도 없으니 차악이나 가리자'는 자조가 범람하는 이유다. 3류 선거를 거친 새 시장이 이끌 서울시가 걱정된다.

염영남 정치부 차장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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